어이 없었다. MBC 기자들이 파업 때 뉴스의 공정성 회복을 외쳤더니, 일부의 반응에는 ‘정치’와 ‘이념’이 똬리를 틀었다. 사측은 기자들의 저항에 ‘정치파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한 간부는 기자회장인 나를 두고 ‘야당과 손잡은 좌빨’이라고 했다(그 말을 들은 여당 의원이 전달해 준 내용이다). 한 진보 인사는 MBC 기자들이 정권과의 싸움에 앞장서야 하는데 풀 죽어 있다며 다그쳤다. 진보 매체의 한 후배는 나를 조금 겪더니 ‘좌파가 아니어서 실망’이라고 했다. 우리의 저항이 갖는 의미를 보수는 위협으로, 진보는 도구로 해석한 듯 했다. 다만 법원은 달랐다. 6만1871자에 달하는 판결문에 정치파업이나 좌·우 같은 표현은 없었다. 공정방송은 근로조건이라는 우리의 외침이 오롯이 담겼다.
기자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얻어낼 수 없는 판결이었다. 그런데 많은 언론학자들은 지사적(志士的) 언론인, 즉 저항하는 언론인을 이제는 멸종된 혹은 지양해야 할 개념으로 언급한다. 하지만 사장을 퇴진시킨 지난해 KBS 기자들의 파업, 사주 구속으로 이어진 2013년 한국일보 기자들의 제작거부, 공영언론 정상화를 위한 MBC·KBS·YTN·연합뉴스의 2012년 연대 파업에서, 생계의 안정과 실존의 위협을 무릅쓴 기자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 BBC 사장 그렉 다이크의 자서전에 답이 있다. ‘정부든 국민이든 압력을 가할 권리는 있지만, BBC가 저항하지 않을 때가 문제다.’ 결국 저항이란 투철한 직업정신의 표현이다.
저항이 결실을 보도록 앞으로의 논의는 공영방송과 정치권력의 운명공동체적 결합을 막는 제도 개혁에 집중되길 희망한다. KBS·MBC 사장의 선임 절차, KBS·MBC 이사회의 구성을 손보지 않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2012년 MBC 사태’ 같은 참극과 소모적 공방은 재연될 수 있다. 물론 제도만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으며, 세계 어디에도 정치적 진공 상태에 있는 공영방송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우리에겐 최소한의 제도적 보장도 절박하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다.
공정한 뉴스에 대한 기자들의 고민과 토론도 더 뜨거워지길 바란다.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추상적 선언만으로는 공영방송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지배구조의 영향이겠지만 방송과 방송기자들은 늘 집권세력과 같은 편에 서 있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어떤 경우에라도 훼손될 수 없는 공정한 뉴스의 작업 표준 같은 것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런 생각은 최근 BBC 메인 뉴스를 보다가 더 굳어졌다. 총선을 1주일 앞둔 그날의 톱뉴스는 총리 후보자 3명을 세워놓고 시청자들이 질문하는 내용이었다. ‘그 공약을 어떻게 믿느냐?’, ‘총리가 잘못 알고 있다. 내가 총리 하는 게 낫겠다’, ‘거짓말이다’라는 시민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방송됐다. 직업과 연령대가 다른 9명의 시민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조목조목 따지는 ‘갑’이었고, 후보자들은 답변하느라 진땀 빼는 그야말로 ‘을’이었다. 정치에디터의 클로징 멘트도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분명한 승자는 어느 후보도, 전문가도, 저 같은 기자도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영국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런 뉴스를 보면 당장 달려가고 싶다. 보도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