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아·김희영·강아영 기자 2015.04.28 23:00:36
종합편성채널의 ‘성완종 리스트’ 파문 관련 일부 보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핵심과 관련 없는 내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신변잡기를 ‘특종’이라는 자막을 붙여 내보내면서 논란을 부르고 있다.
종편의 이런 보도 방식은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으로 이슈의 본질을 희석시킨다는 비판과 함께 자사 기자들이 공 들여 취재한 단독 보도의 가치마저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종편 기자들은 “말도 안 되는 특종경쟁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최근 논란이 된 방송은 지난 20일 채널A 종합뉴스의 ‘이름 궁합’ 보도다. 채널A는 ‘여의도 24시’ 코너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이완구 총리의 친분을 전하며 두 사람의 ‘이름 궁합’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채널A는 “두 사람이 1년간 무려 210여 차례 전화를 주고받았다. 정말 부부사이에도 힘든 일”이라며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단독]성완종-이완구 궁합 무려 90%…보통 사이 아니다’란 사진을 올렸다. 누리꾼은 이쯤 되면 진짜 사귀는 사이라고 비꼬고 있다”고 전했다. 이름 궁합은 각각의 이름 획수를 더한 숫자로 궁합을 보는 놀이이며,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해당 뉴스는 ‘성완종 회장, ‘욘사마’와도 친밀한 관계?’라는 제목으로 배우 배용준씨와의 친분도 보도했다.
TV조선은 21일 ‘황금펀치’에서 성 전 회장 변호인의 단독 증언 2탄을 방송했다. TV조선 특종이라며 “성완종, 어깨뼈 특히 좋지 않아”, “성완종, 회식 때 삼겹살 잘 먹어”, “성완종 평소 등산 즐겨” 등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자막 앞에는 ‘TV조선 특종’이 붙었다.
비리 의혹과는 무관하게 시청자들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이 같은 보도는 본질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지상파 방송사 A기자는 “한마디로 저널리즘이라 할 수 없다. 시청률 경쟁에서 상업적 이익을 취하고, 사생활 엿보기로 권력형 부패·비리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희석시키려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이런 보도가 계속되면 사건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국민들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 표면에 나타나는 문제가 생긴다. 언론의 공적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고 겉으로 보이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곁가지 보도를 하고 있다”며 “문제의 본질과 책임자 등을 분명히 짚어줘야 하는데 감정적·상업적으로 사건을 호도해 시청률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종편이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보도가 아닌 ‘합리적 저널리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장남 대균씨 관련 보도에서는 선정적 보도가 극심하게 나타났다. 당시 종편들은 유병언·유대균의 식습관과 여성편력, 성격, 취미생활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신변잡기 보도로 비난을 샀다. 특히 유대균씨 검거 과정에서 ‘[단독]유대균,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치킨 주문’, ‘[단독]한 번에 100인분 주문…‘통 큰’ 유대균’(이상 채널A), ‘유대균 “배달음식 시킨 일 없다”’(TV조선) 등을 비롯해 경호를 맡은 박수경씨에 대해 ‘미모의 호위무사, 박수경은 누구?’(MBN), ‘박수경, 유대균에서 “조백님” 깍듯…잠도 따로 잤다’(채널A) 등을 보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단정하고 지나치게 선정적인 방송을 했다며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북한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다. 주로 패널들이 출연하는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추측성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토크콘서트와 관련해 “종북 궤변쇼”, “북한에서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의 자극적 발언이 쏟아졌다. 또 지난해 10월 채널A는 김정은 위원장 잠적과 관련한 ‘설’을 전하며 내용과 무관한 ‘김정은, 배우 유연석과 동갑’을 사진과 자막으로 계속 내보냈다. TV조선은 지난 1월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역학자가 발언한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 제1비서의 귀인이다. 김 제1비서를 수양아들로 받아줘야 한다”는 내용을 그대로 방송했다.
반복되는 문제에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평기자들을 중심으로 데스크에 개선을 요청하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종편의 B기자는 “현장 기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는 보도를 하지 말고 패널 자질도 검증해야 한다”며 “신생 매체라고 조급해져서 이 같은 보도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종편의 C기자도 “네티즌들이 온라인에 올린 내용을 여과 없이 갖다 쓰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며 “나중에 문제가 계속 쌓이다보면 과연 여기서 일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반박 의견도 있다. 종편 D기자는 “앞뒤 설명을 들어보면 이런 사례까지 있다고 보도하며 희화화되고 있는 맥락을 설명한 것인데 종편이라고 악의적으로 비판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종편의 이런 보도 태도는 종편 뉴스의 신뢰를 떨어뜨려 자사 기자들이 취재한 의미 있는 보도까지 퇴색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경향신문이 성 전 회장과의 통화(“김기춘 10만달러·허태열 7억 줬다”)를 단독 공개한 10일 채널A는 ‘허태열 7억, 홍준표 1억, 홍문종 2억…’ 등 숨진 성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성완종 리스트’ 내용을 단독 입수해 가장 먼저 보도했다. 종편의 E기자는 “기사보다는 외부 패널들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해를 많이 받아 억울한 면도 있다”며 “매체 전체로 비판받다보니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부 소통 문제도 있다. 종편의 B기자는 “과연 고쳐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평기자들 사이에 불만은 높지만 회의감에 빠져 가만히 있는 경우도 많다”며 “시청률만 신경쓰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시청률에 대한 내부적인 논의나 방식에 대해 기자들 의견수렴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지상파 A기자는 “사내에서 저널리즘적인 원칙보다 경쟁에 따른 생존논리가 우선시되는 가치 전도 현상 때문”이라며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조직 논리에 따라가는 한국 저널리즘의 현실이 있는데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기레기’ 논란은 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사회의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저널리즘이 존재하는 것인데 시청자 확보를 위해 감정과 분노를 표출하고, 진영논리에 따른 내용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문제는 논란이 돼도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보도가 계속되면 뉴스 소비자들은 결국 뉴스를 외면하고 믿지 않게 될 수 있다. 스스로 자정하지 않는 이상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