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언론이 보여준 부끄러운 민낯을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했다. 그 후 우리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갈 길’은 멀지만 피해자나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인식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언론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재난보도준칙이 제정된 덕도 있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피해자, 피해자 유가족, 안산 단원고 학생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학습효과’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은 “예전과 비교해 사고 현장 취재지시를 내릴 때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의 근접 인터뷰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관계자도 “사고 취재를 나갈 경우 수시로 기자들에게 유의점을 주지시킨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발생한 인천 강화군 캠핑장 텐트 화재로 두 가족 5명이 희생됐고 희생자 이씨의 둘째 아들(8)이 유일한 생존자였지만 이에 대한 인터뷰는 없었다. 두 사고를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인식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일부 언론이 부모와 오빠를 잃고 홀로 생존한 5살 권모양의 얼굴 사진을 싣고 구조된 학생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던져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13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원칙적으로 취재하지 않고 부득이 한 경우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에 준하는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개선 여부를 판단하기엔 섣부르다는 게 중론이다. 정확하고 충실한 재난보도를 위해 재난 현장에 가급적 두도록 한 ‘현장 데스크’나 각 사 대표가 참여하는 ‘재난현장 취재협의체’ 구성 등을 제대로 평가·검증할 수 있을 만한 재난사고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날로 치열해진 취재환경을 감안할 때 재난사고 돌발시 재난보도준칙이 제대로 작동할지도 미지수다.
세월호 사고 당시 사회부장을 맡았던 한 종합일간지 간부는 “매일 시간과 싸우는 기자들 입장에선 재난보도준칙을 존중하다 보면 취재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다”며 “국민의 알 권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준칙과 취재 간 조화를 이루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난보도준칙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현재 재난보도준칙과 관련된 교육은 언론진흥재단이 위탁받아 실시하는 수습기자 교육프로그램 외에 사실상 전무하다.
경향신문 한 중견기자는 “기자들이 세월호 사고 당시 ‘기레기’라는 소리까지 들었기 때문에 경각심이 생겼고 이 때문에 최근 보상금 지급 문제도 조심스럽게 다뤘다”며 “관건은 데스크와 담당 취재기자가 바뀌더라도 이런 경각심을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난보도준칙 교육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교육 대상 역시 데스크급으로 확대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연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취재 기자뿐 아니라 데스크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현장에서 올라오는 의견이 묵살되지 않기 위해서”라며 “데스크급이 모르고 지키지 않으면 재난보도준칙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