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김희영·강아영 기자 2015.03.18 13:23:04
최근 인터넷에 유출된 MBN 업무일지에는 모 종편사가 광고 영업을 위해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광고를 안주면 악의적 기사로 본때를 보이겠다는 의미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부적절한 광고 수주의 한 단면이다. 한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말이 안 되는 무리한 기사를 쓰는 언론들이 있다”며 “심하게 말하면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강도나 다름없다”고 했다.
언론환경 악화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에 대한 광고·협찬 강요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3년 한국광고주협회 조사에 따르면 강압적 협찬 요구가 연간 10회 이상 발생되는 경우는 72.5%에 달했다. 협찬 금액도 회당 1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가 50%, 1억원 이상인 경우도 8.3%를 차지했다.
광고·협찬을 의식하는 언론사의 부적절한 보도 행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양상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뉜다. 기업 공격형 기사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며 광고를 요구하는 경우, 주요 광고주인 대기업을 의식해 언론사가 스스로 기사를 톤다운시키거나 띄워주기식 보도를 하는 경우다.
악의적인 광고 압박의 대표적 사례는 오너십 지적 기사다. 일반적으로 기업 총수를 겨냥해 표적기사를 쓰고 광고를 주면 내리는 방식이다. 기사 내용은 과거 기사를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것으로 선정적 제목이 달려 보도된다. 광고주협회가 운영하는 반론보도닷컴에 따르면 일요시사는 ‘재계 뒷담화’라는 고정 코너를 통해 대기업 총수의 사생활 등 각종 의혹보도를 이어가고 있고, 시사위크도 지난해 말 하루에 3~5건씩 기업 관련 부정적 기사를 집중 보도했다.
또 다른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오너에 관한 보도는 기업 홍보팀에서 최우선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퍼지는 속도도 빠르다”면서 “아무리 작은 매체라도 포털 검색이 되면 파급력이 커 홍보팀 입장에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일부 매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메일이나 팩스, 카톡 등으로 다음날 실릴 비판기사를 홍보 담당자들에게 보내 무언의 압박을 넣는 언론사도 있다. 사후 처리보다 원천적 예방이 중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광고·협찬에 응하는 것이다.
주류 언론의 경우 노골적으로 악의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다. 기업들이 매달 일정 액수의 광고 협찬을 집행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게 묵시적으로 굳어졌다. 보도 논조는 평소에 해당 기업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느냐 아니냐에 좌우된다. 종합일간지 한 간부는 “매달 협찬 명목으로 보험을 들고 있는 기업의 경우 신제품이 나왔을 때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언론들이 알아서 써준다”고 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이 처음 보도된 지난해 12월8일. 수많은 매체가 받아쓰고 추가취재를 하는 동안 TV조선 ‘뉴스쇼 판’에서는 3일간 해당 뉴스를 볼 수 없었다. TV조선 주요 주주사인 대한항공을 덮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특히 광고수익에 대한 기여도가 압도적인 삼성 관련 기사는 모든 언론사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삼성을 제외한 국내 10대 대기업의 광고·협찬비를 모두 합쳐도 삼성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3월 경향신문의 송경동 시인 칼럼 내용 중 삼성을 비판한 문장을 들어낸 일이나, 전자신문과 삼성전자의 소송전 등이 논란이 됐던 이유는 이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혼수상태 이건희 회장, 이승엽 홈런에 눈 번쩍’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보수·진보 매체 가릴 것 없이 삼성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쓴 결과였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언론이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 더욱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면서 “대기업 관련된 기사는 잘 써줘야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다들 하는 것이다. 좋은 기사라도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도를 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언론들이 기업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언론사 수는 우후죽순 늘어나는 반면 기업 광고의 전체 파이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3년 정기간행물 등록건수는 1만6041건으로 전년 1만4563건 대비 1478건 증가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내 몫은 지키고 남의 몫을 빼앗아야 하는’ 광고·협찬 수주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4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지상파방송 광고비는 전년 대비 5.4% 감소한 1조8273억원을 기록했고, 신문과 잡지 광고시장은 각각 -6.6%, -8.4% 성장했다. 전체 수익 중 광고·협찬이 70~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수익 구조의 개선이 불가피하지만 언론사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고 수익이 없으면 운영되지 않는 언론사 수익 구조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라면서 “미디어가 급속히 스마트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기존 광고들이 모바일과 온라인 쪽으로 많이 이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질적이고 해묵은 광고·협찬 강요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행태를 막기 위해 언론 모니터 감시단 등이 사례를 적발해 삼진아웃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신고제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자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