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언론통제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하고도 보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경향신문 노조가 편집국의 ‘침묵’을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전국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는 16일 발행된 노보에서 “타지가 침묵한다고 우리의 침묵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달 27일 경향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자신에 과한 의혹 제기를 막기 위해 종편사에 패널 교체를 지시하고, 언론사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기자들에 대한 반감으로 ‘김영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언론통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이완구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6일 KBS의 녹취록 보도를 통해 공개됐으며, 녹취록을 야당에 전달한 것이 한국일보 기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후폭풍이 일었다. 한국일보는 지난 10일 녹취록 보도 누락 및 녹취록이 야당에 전달된 경위 등을 해명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함께 동석했던 경향, 문화, 중앙에선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 의문을 자아냈다. 특히 ‘진보지’로 분류되는 경향신문이 국무총리 후보자의 잘못된 언론관을 직접 확인하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데 대해 언론계 안팎에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향신문 정치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 1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녹취를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경향신문 기자는 이 총리의 발언을 녹음하지 않았지만, 동석했던 기자들과 녹취록 내용을 공유했고, 정보보고까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향 노조는 16일자 노보 ‘합설’을 통해 “일선기자가 놓쳤다면 데스크가, 데스크가 간과했다면 편집국 간부진에서 챙겼어야 할 수많은 팩트가 적시에 지면화되지 못했다”며 “일선과 데스크, 편집국 간부진 어느 한편의 잘못만으로 규정하기 힘든, 시스템의 위기를 노출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성 정치권의 언론에 대한 뒤틀린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이 둔해졌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도가 묘연하다”고 일갈했다.
노조는 또한 언론노조의 비난 성명과 기자회견, 기자협회보를 비롯한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를 전하며 “다른 신문은 몰라도 경향신문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언론계 내부의 목소리도 함께 전달했다.
경향 내부에서도 ‘이완구 언론통제 발언’과 관련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다소 느슨해진 취재 관행과 경향신문이 추구하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볼 기회”라는 지적과 “신문을 만들다보면 놓친 기사가 있게 마련이다. 그 하나하나에 입장 표명을 해야 하나”란 반론, “정보보고에 언론통제와 관련한 발언내용이 있었던 만큼 그 내용에 대해 적극적 추가 취재를 내렸다면 사건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았냐”는 재반론 등을 실었다. 한편에선 “이완구 관련해 총리 후보자 검증팀이 꾸려지기도 전에 ‘준비된 총리’라는 기사가 나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이번 일을 예고한 단초”라는 분석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새 집행부 출범 시기와 맞물리면서 노조 차원의 대응이 한 박자 늦어졌다는 점도 시인했다. 제23대 노조 집행부는 지난달 29일 취임식과 지난 12일 첫 대의원회의를 시작으로 공식 출범했다.
편집국 차원의 입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노조는 전했다. 박래용 편집국장은 ‘연휴가 지나고 얘기하자’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 노조 독립언론실천위원회는 다음달 2일 이완구 총리의 언론통제 발언과 관련해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