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기자 2015.02.04 00:53:28
한국일보가 승명호 회장과 이종승 사장, 이영성 부사장 등 새 경영진의 선임 사실을 자사 지면을 통해 알린 3일 기자들은 보복인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편집국에 붙였다. “새로운 사주의 뜻과는 상관 없는 것이 명백한, 일부 개인적인 불화 때문에 후배의 기자생명을 끊어놓겠다는 보복인사다.”(62기 기자들 성명)
법정관리를 18개월 만에 졸업하고 새로운 도약을 선언한 한국일보가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새 경영진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20여명에게 퇴직을 종용하고 일부 기자들에게 비편집국 발령을 통보하면서다. 기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게 일자 사측에선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물러섰지만, 비리사주를 벗어나 새 출발을 꿈꾸던 구성원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법정관리 공식 종료를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한국일보는 ‘경영정상화 계획에 따른 희망퇴직 실시’를 공고했다. 새 경영진과 노조가 고용 보장 등을 명시한 ‘노사 상생 합의서’에 서명한지 닷새 만의 일이었다. 노조는 “노사가 서로 화합하고 상생해 나아가야 할 출발 시점에 나온 경영진의 첫 결정이 희망퇴직 공고”라며 즉각 우려를 표명했지만, 경영진은 그대로 밀어붙였고 연장공고까지 냈다.
그리고 일부 직원에게는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됐다고 개별 통보하며 사직을 종용했다. 희망퇴직 대상자는 기자 5명을 포함해 총 21명. 이 중 17명은 희망퇴직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으나, 나머지 기자 4명은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지난 2~3일 소명 절차가 진행됐다. 이들은 명확한 인사평가 기준에 근거하지 않은 퇴직 종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된 편집국 한 기자는 “자르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거꾸로 소명만 하라는 건 적반하장 식”이라며 “정확한 인사평가 시스템에 근거하지 않는 한 누구를 잘라도 납득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희망퇴직과 별개로 편집국 고참급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좌천성’ 인사도 논란이다. 이종승 사장과 이영성 부사장 등 경영진은 최근 A 논설위원과 편집국 B 부장에게 비편집국 발령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들은 이번 인사를 납득할 수 없다며 “보복인사”라고 주장했다.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고 능력도 검증된 두 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내보낼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자들은 3일 기수별 성명을 잇따라 내어 노사 화합과 상생을 무시한 경영진 일방 주도의 인사 조치에 참담함을 토로하며 “원칙과 근거 없는 희망퇴직 종용 및 부당인사를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도 성명을 통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을 갖춰, 이에 따른 평가와 인사를 진행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경영진은 “미래 생존 기반을 갖추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고재학 편집국장은 3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한국일보가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지속 가능한 조직과 인력구성, 경영문화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며 “동료를 잃는 아픔을 감수하며 인적 쇄신을 진행하는 것도 생산성 높은 구조를 만들어 미래 생존의 기반을 닦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고위 경영진도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고인 물을 역동적으로 돌리려는 것뿐, 어떤 다른 기준이나 의도도 없다”고 말했다.
경영진은 일단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재논의 한다는 입장이다. 편집국 한 기자는 “승명호 회장도 들어오자마자 분란이 이는 것을 원치 않을 테고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며 “전원 구제할지, 일부 구제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는 힘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고재학 국장도 희망퇴직 대상자들의 소명을 들은 만큼 “조만간 새로운 판단을 내릴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그러나 전면 철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첫 인사부터 노조와 기자들에게 밀린다는 인상을 남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 고위 경영진은 “인사는 경영권의 일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이번 희망퇴직 및 인사 논란이 어떤 식으로든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편집국 폐쇄와 ‘짝퉁 한국일보’ 발행에 저항하고, 전 사주를 구속시키고, 재정적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새로운 사주를 찾아 기적적으로 회생에 성공한 한국일보가 새 출발부터 갈등의 씨앗을 품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김주성 한국일보 노조 위원장은 “갈등과 분란 없이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경영진의 올바른 판단을 요청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