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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쩐의 전쟁'에 시청자는 '뒷전'

간접·가상광고 프로그램 포함
'방송 홈쇼핑화' 우려 목소리
의견 수렴 없이 추진 문제도

김고은 기자  2015.01.21 14: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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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가 전쟁터가 됐다. 먹이(광고)는 한정돼 있는데, 포식자(방송사업자)는 늘어나면서 더 많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방송생태계가 혼돈의 늪에 빠졌다. 고래들 싸움에 터지는 것은 시청자다. 방송 산업과 광고시장 활성화라는 명분 속에 방송법 제1조가 명시하고 있는 ‘방송의 공적 책임’과 ‘시청자의 권익보호’는 빠져 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드라이브’에 따라 이 같은 경향은 더 심화될 것이란 점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4일 합동으로 진행한 신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15년도 중점과제의 하나로 광고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상파 광고총량제 실시와 가상광고 및 간접광고 규제 완화 등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을 거쳐 현재 입법예고 중인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당시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상파 광고총량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웠지만, 실제 시청자 입장에선 간접광고와 가상광고 규제 완화에 따른 피해가 더 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프로그램 안에 포함되는 간접광고 및 가상광고의 특성상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광고와 프로그램을 분리하고 시청자들이 광고와 프로그램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광고의 형식 규제뿐 아니라 내용 규제까지 대폭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프로그램에서 간접광고 상품의 기능을 시현하는 것이 사실상 완전 허용된다. 제품을 단순 노출시키는 수준을 넘어 제품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홍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장낙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은 “방송에서 상품의 기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방송되어도 ‘허위 또는 과장된 내용’이 아닌 이상 규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한해 과도한 제품 기능 시현으로 방통심의위로부터 제재 받은 프로그램은 지상파 4건, 유료방송 12건으로 총 16건에 달했다. 장 위원은 “법정제재를 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데 (규제를) 아예 풀어버리면 방송이 완전히 홈쇼핑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방송은 ‘광고 백화점’이 된 지 오래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지나친 간접광고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늘 최신 스마트폰을 쓰고, 같은 커피숍에서 만나고, 아웃도어 제품을 착용한 채 캠핑을 즐기는 모습이 화면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도 모두 PPL 때문이다. 2010년 간접광고가 합법화된 이래 5년간 지상파 방송 3사가 간접광고로 올린 매출은 총 1000억 원 이상. 


PPL이 많아질수록 방송의 상업화와 프로그램 완성도 하락, 시청권 침해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2013년 간접광고 허용 기준을 엄격히 제한하고, 위반 시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원 위기에 내몰린 방송사업자들의 지속적인 광고 규제 완화 요구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규제 완화 정책 기조가 맞물리면서 ‘시청권 훼손’ 우려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방송사들은 ‘시청권’ 측면에서도 광고 규제 완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지상파 방송사 한 관계자는 “재원이 부족하면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다. 재원 문제를 해결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크게 보면 시청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사업자 입장에서도 근시안적 처방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고주가 전체 광고 예산을 약간 더 편성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프로그램 광고나 다른 광고 예산을 줄여 간접광고 예산에 지출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신 방송의 상업화가 더 심해져 시청자 피해가 커지고 전반적으로 프로그램의 질과 방송 콘텐츠에 대한 호감도를 떨어뜨려 한류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규제는 한번 풀면 다시 묶기 힘들기 때문에 충분한 시뮬레이션과 공청회, 의견수렴 등을 거쳐서 해야 하는데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방통위는 입법예고 뒤 공청회 개최 등 이해당사자 의견수렴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연내 입법 의지는 꺾지 않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내달 2일 입법예고가 종료된 후 방통위 전체회의 의결과 규제개혁위원회, 국무회의 등의 심사를 거쳐 공포·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