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12일 신년 기자회견은 그간 박 대통령이 보인 소통 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주요 현안에 자신만의 논리를 고집하며 여론의 인적쇄신 요구를 일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핵심을 비껴가고, 추가 질문도 봉쇄해 불통의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 출입인 A기자는 “비선실세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를 믿지 못한다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와 동떨어진 말을 했다”며 “국민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았고 원론적인 얘기만 반복했다. 경제 활성화와 통일에 대한 얘기는 출입기자로서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퇴근 후 관저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등의 불필요한 질문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던 기자들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당면 현안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항변하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박 대통령은 “소통 지수가 몇 점이라고 생각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지난 2년 동안 민생현장에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 장관의 대면보고를 강조하는 질문에는 장관들을 바라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거나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만 그렇다고 아시지, 청와대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전혀 모르시네요”라며 핀잔했다.
다소 답답했던 기자회견 내용과 달리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지난해 ‘사전 각본 논란’을 의식한 듯 변화한 모습을 보였다. 질문을 던진 기자 수는 지난해 12명에서 16명으로 늘었으며 사전에 청와대 측에 질문지를 제공하지 않았다. 청와대 간사들은 회의를 통해 질문할 매체를 선정하고, 기자들은 질문 내용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B기자는 “지난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이 심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자들도 상당히 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진정한 변화,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답변이 충분치 않으면 다시 질문을 해야 하는데, 추가 질문을 봉쇄해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끝났다. 기자회견이란 껄끄럽더라도 국민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기자회견 직전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질문 순서와 키워드와 다르지 않게 질의응답이 진행되자 또 다시 ‘각본 논란’이 일었다. 뉴스타파는 13일 “지난 주 금요일 청와대 기자단이 회견에서 던질 질문을 키워드 형태로 정리했고 이 내용은 정보보고 형식으로 각 언론사에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청와대가 사전에 질문 내용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회사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되거나, 청와대가 비공식적 통로로 이를 입수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전에 청와대와 질문지를 공유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출입기자인 C기자는 “기자단 간사가 가장 먼저 한 말이 ‘질문지는 (청와대에) 주지 않는다’는 거였다”며 “간사단에 질문을 제출한 것도 아니고, 당일에도 질문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다. 짜고 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A기자도 “정윤회씨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이 다소 흥분한 것이 보였고, 참모들의 놀란 기색을 느낄 정도였다”며 “사전에 조율됐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