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이후 두 번째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사전 각본 논란’과 신변잡기적인 질문으로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았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날 작심한 듯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12명이었던 질문 기자 수는 16명으로 늘어났고, 기자들의 질문 내용은 사전에 청와대에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답변은 두루뭉술했고, 핵심을 비껴가기 일쑤였다. 대다수 언론이 국정 쇄신의 전제조건이라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서관 3인방 퇴진 요구에 대해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면 누가 제 옆에서 일을 할 수 있겠나”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집권 3년차 국민과 새로운 소통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신년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송곳 질문에 다소 당황하는 대통령의 모습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는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와 내신기자 102명, 외신기자 19명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90여 분 동안의 기자회견은 박 대통령의 신년 구상 발표와 기자들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질의응답 이후 후속 질문을 받지 않아 주요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분명한 생각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질문자로 선정된 기자들의 소속 언론사는 종합일간지(서울신문, 국민일보, 경향신문), 방송사(SBS, MBN, 채널A, CBS), 경제지(머니투데이, 한국경제신문), 통신사(뉴스1, 연합뉴스), 지역신문(강원도민일보, 전북도민일보), 영자신문(코리아중앙데일리), 인터넷신문(데일리안), 외신(월스트리트저널) 등으로 구성됐다.
이날 기자회견의 핵심은 비선실세 문건 파동으로 이어진 청와대 인사개편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문건파동으로 국민 여러분께 허탈함을 드린데 대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며 “청와대도 새롭게 조직개편을 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과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건 내용과 관련해서는 “검찰에서 과학적 기법까지 총동원해 철저하게 수사한 결과 모두 허위고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에 대해서도 “김 비서실장께서는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여러 당면 현안을 수습해야하지 않겠나. 그 일들이 끝나고 나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비서관 3인방과 관련해 “교체할 생각이 없다”며 “검찰, 언론, 야당에서 이권이나 비리가 있나 오랜 기간 찾았지만 하나도 없지 않았나.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면 누가 제 옆에서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또한 정윤회씨의 실세 의혹을 두고 “정윤회씨는 실세는커녕 전혀 국정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기자들은 △남북정상회담 △기업인 가석방 논란 △개헌에 대한 입장과 지방자치 발전 구상 △디플레 진단과 해법 △비정규직 해법 및 사학·군인연금 추진 방향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 대한 생각 △세월호 유가족 면담 요구 불응 등 소통에 대한 지적 △한일 관계 해법 △언론과 표현의 자유 △당청 관계 개선 △내각 소통 및 수도권 규제 완화 △주요 인사의 출신 지역 쏠림현상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생각 △남은 임기 동안의 과제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문화일보는 12일 사설에서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불통 이미지를 바꾸고 이를 위해 청와대를 쇄신하겠다는 의지”라며 “그러나 그런 기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수 국민이 청와대의 불통을 걱정하는데, 박 대통령은 아니라고 하는 식이 됐다. 이런 인식의 괴리가 있다면 국정 동력에도 지장이 생긴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정리.
- 왜 청와대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느꼈나. 비선실세 문건 유출사건과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 파동도 영향을 미쳤나. 청와대 책임론을 내세우는 쪽에서는 특정인 교체까지 요구한다. 비서실장과 세 비서관도 개편안에 포함되나. 일괄사표 방식도 가능한가. 비선실세 국정개입 문건에 대한 특검, 국정조사에 대한 생각은. (이지운 서울신문 기자)
“청와대 조직개편 관련해 집권 3년차에 국정 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성공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주요수석들과 잘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일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주요 부문에 특보단을 구성하려고 한다.
… 항명 파동 말씀하셨는데 나는 항명파동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민정수석이 있지 않았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본인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 공세에 이렇게 싸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문제를 더 키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그랬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민정라인에서 잘못된 문서유출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책임지고 간다는 뜻으로 사표를 냈다고 이해한다. 이해는 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국회에 나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여태 특검이라고 보면 사실에 대한 실체가 있거나, 친인척이나 측근 실세가 권력을 휘둘러서 감옥 갈 일을 했거나,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을 때 특검을 했다. 그런데 문건이 조작, 허위로 밝혀졌고, 샅샅이 뒤져도 나타는 것도 없다. 의혹만 가지고 특검을 한다면 선례를 남기게 되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낭비가 심하겠나.”
- 정윤회씨가 실세인가. 아니라면 왜 계속 이런(문체부 인사 개입 등) 이야기가 나오나. 후보 시절에 친인척 관리를 잘 하겠다고 했는데, 관리를 강화할 생각인가. (이승재 SBS 기자)
“정윤회씨는 벌써 수년전에 저를 돕던 일 그만두고 제 곁을 떠났기 때문에 국정 근처에도 갔던 적이 없다.
또 문체부 인사도 지난번 보도됐는데 조작된 얘기라고 나왔었다. 말하자면 태권도 체육계 비리가 쌓여서 자살하는 일도 벌어지고 이건 도저히 묵과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잡아라 지시했던 것인데, 도대체 보고가 올라오지도 않고 해서 어떻게 된거냐 계속 따지니 그 역할을 안했더라. 그래서 책임을 물었더니 대통령 지시라서 바로잡고자 하는데 왜 제 역할을 못하느냐 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 친인척, 측근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에 역대 정부가 얼마나 그런 일이 많았나. 이권 개입하고, 엄청난 비리들이 터져 나왔다. 특별감찰관 제도를 도입하겠다, 국회에서 통과가 될 거고, 이것이 시행되면 이런 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이간질 시켜서 말려드는 것 아닌가.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 기업인 가석방을 주장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달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역차별 등 찬반논란이 있었다. 그동안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 고유권한이라고 말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기업인 사면 및 가석방에 대한 대통령 입장은 무엇인가. (김익태 머니투데이 기자)
“기존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그러나 기업인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가석방 문제는 국민들의 법 감정,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취임 전후 소통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면담 요구에 불응하기도 했다. 소통지수 100을 만점이라고 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겠나. 구체적 복안은 있나. (이용욱 경향신문 기자)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사실 많이 만났다. 진도 팽목항도 가고 끝까지 다 듣고 애로사항을 적극 반영하고 청와대 면담도 가졌다. 그런데 지난번에 못 만난 이유는 국회에서 법안이 여야 간에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논의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끼어들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만나지 못한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과 관련해서는 지난 2년 동안 민생현장, 정책현장 직접 가서 터놓고 얘기도 하고 의견도 듣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청와대로 각계각층의 국민 초청해서 얘기 듣는 등 활발한 활동을 많이 했다.
정치권과는 여야 지도자를 청와대에 모셔서 대화도 가졌다. 그럴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했는데 제가 여러 차례 딱지를 맞았다고 해야 하나, 제 초청을 거부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어쨌든 국회와 더 소통하고 지도자들과도 더 만남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 지난 대선 때 책임장관제를 언급한 적이 있다. 핵심은 인사권인데, 현 정부 들어 산하기관이나 국장급 인사도 청와대가 쥐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대면보고 자리가 적지 않나. 청와대와 내각 간 소통을 방해한다는 지적이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적격성 검증을 제외하고는 장관이 실질적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 옛날에는 대면보고만 하지 않았나. 요즘은 전화 한 통이 더 편리할 때가 있다. 대면, 독대, 전화통화 등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앞으로 대면보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더 늘려가겠다. (국무위원들 바라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웃음) 청와대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전혀 모르시네요.”
-미국시민이 한국으로부터 강제 출국되는 일이 있었고 이와 관련해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국가보안법의 일부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재검토를 실시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가. (알라스테어 게일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국장)
“각 나라마다 사정이 같을 수가 없다. 국가의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나라에 맞는 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 꼭 필요한 법이 미국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남북대치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진행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