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으로부터 기사 조정을 요구하는 전화를 자주 받았다. 굉장한 부담감을 느꼈고 사실상 무시하기 어렵다. 담당 부서에 기업 쪽 얘기도 들어보도록 하고 반론과 주장을 다 넣어주라고 했다.” (A 종합일간지 편집국장)
“기사를 톤다운 해달라는 협조 요청이 많았다. 신문사에서 기업에 광고와 협찬에서 아쉬운 소리를 종종 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기사를 빼거나 할 수는 없지만 제목내지 단수 조정 정도는 해줬다.” (B 종합일간지 편집국장)
편집국장들이 경영진의 직·간접적인 광고 및 협찬 요구에 시달리고, 기사 제목이나 단수 조정을 요청하는 광고주의 압력을 상시적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주와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가 심해지면서 사내 갈등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의 편집권에 대한 인식 연구’에서 편집국장이 신문 제작 현장의 책임자인 동시에 경영진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사주와 경영진의 압력과 신문의 사회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현실을 조명했다. 이번 연구는 10개 종합일간지 전‧현직 편집국장 14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신문사 편집국장을 심층 인터뷰한 연구 논문은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게 언론학계 평가다.
논문을 쓴 이충재 위원 역시 편집국장 출신이다. 이 위원은 지난 2011년 6월 한국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10개월 만인 이듬해 4월 전격 경질됐다. ‘광고 매출 부진’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배경에서 이 위원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는 “신문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 편집국장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에서 이들이 편집권 독립과 자율성, 광고주와 사주 또는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들은 편집국장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 저널리즘의 가치 구현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그런 한편으로 광고자본과 광고권을 앞세운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가 심각하지만 현재 신문 위기를 감안하면 불가피하고 어느 정도는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편집권을 침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광고자본이다. 신문의 위상이 낮아지면서 광고주 압력의 강도가 세지고 지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간섭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대기업에 부탁해야 할 게 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광고주들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은 탓에 비판 기사를 발제하거나 쓰는데 제약이 많고 삼성의 로비도 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이 삼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고 기자들과의 갈등도 상당 부분이 삼성 기사와 관련돼 있었다고 논문은 전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일간지 편집국장은 “모 기업 회장이 검찰 수사 받을 때 기업과 회사 고위층에서 잘 봐주라는 전화가 와 고민 끝에 1면에 나갔던 것을 사회면 톱으로 옮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편집국장들이 받는 압박은 상당하다. 한 편집국장은 광고와 협찬을 따내기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업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져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고 말했고, 다른 편집국장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광고주 관련 기사 처리 문제로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연초가 되면 사장과 함께 대기업들을 돌아다니며 광고와 협찬을 부탁하는 인사를 다녔다는 편집국장들도 여러 명 있었다고 논문은 전했다.
사주나 경영진에 의한 편집권 침해도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주는 신문의 색깔, 논조 등 정체성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경영진은 광고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갖도록 편집부문에 압력을 넣는” 식이다. 종교재단 소유 신문사들의 경우 해당 종교 관련 행사의 지면게재를 둘러싼 압력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편집권 침해가 심화될수록 내부 감시 체제가 활발히 작동해야 하는데, 이 역시도 상당 부분 위축된 상태다. 공정보도와 지면 감시를 위해 기자들이 중심이 된 민실위, 공보위 같은 조직의 활동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의 위기 속에서 경영 위축을 의식한 자기검열과 현실순응적인 기제가 은밀히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문의 위기는 저널리즘 가치의 약화를 초래하며, 이는 신뢰의 추락으로 이어져 신문 경영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때문에 논문은 “신문의 위기 극복을 위해선 저널리즘의 본령 회복이 가장 중요하며 그 중추적 역할은 편집국장이 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더욱이 편집권 침해에 대한 기자들의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편집국장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위원은 “신문이 어려울수록 저널리즘의 본령을 찾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고 그 앞에는 가장 큰 소임을 맡고 있는 편집국장이 서야 한다는 확고한 의식이 요구된다”면서 “신문기업에서 저널리즘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단순히 해당 신문사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은 물론 사회 전체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편집권 독립의 일차적 목표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언론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