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 언론자유를 외치다 쫓겨난 동아일보 해직기자 14명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손배 소송을 낸 해직기자 및 유족 134명 중 일부인 14명만이 승소 판결을 받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는 “사실상 전원 패소 판결”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동아일보 해직기자 14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동아일보는 1975년 3월 박정희 정권 당시 언론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중지하라며 저항한 기자, 아나운서, PD 등을 대거 해고했다. 이후 2008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광고 탄압 등 정부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동아일보가 기자들을 해임했다는 취지의 진상 규명 결정을 내렸고, 이듬해 해직기자와 유족 등 134명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해직 기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인정하지만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다. ‘해방 이후 언론탄압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된 2004년 11월 이후 5년이 경과한 2009년 12월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2008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해 피해사실을 인정받은 14명에 대한 판단은 다르게 했다. 재판부는 “진실규명을 인정받은 50명 중 14명은 국가가 피해회복을 위한 입법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자 1년 이내 소송을 낸 것”이라며 “정부가 과거사위 결정을 통해 소멸 시효의 이익을 주장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원고들이 특정 시점까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은 권리 남용에 해당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102명의 청구는 각하하고 나머지 18명은 원심과 같이 패소 판결했다.
동아투위와 전국언론노조 등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사실상 원고 전원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다”며 “최고법원이 합법을 가장한 꼼수 판결로 진실을 유린했다”고 비판했다.
동아투위는 “재판부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원고들과 신청하지 않은 원고들을 차별해 신청하지 않은 원고들의 상고를 정당한 이유도 없이 기각했다”며 “진실화해위 결정은 피고 전원이 아니라 단 한명이 신청했더라도 그 효과가 해당자 전원에게 미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은 원고들을 민법상 화해한 것으로 판단해 소송자격이 없다고 한 것도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동아투위는 “이미 항소심 4차, 5차 공판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 국가가 스스로 주장을 철회함으로써 일단락된 사안”이라면서 “대법원은 법조문에만 매달려 다른 재판에 미칠 파장을 도외시하고 기계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현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는 상황에서 심판을 기다려야 했다고 밝혔다. 동아투위는 “재판부가 서둘러 결론을 낸 배경에는 헌재 판단을 무시하겠다는 의도가 있거나 원고들에 대한 불공정 판결을 하려는 저의가 있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동아일보사가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안전행정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의 대법원 상고심 결과에 따라 14명에 대한 손해배상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미 해체됐고 안전행정부가 이를 맡고 있지만 대법원이 동아일보가 승소한 1, 2심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아투위는 “동아투위 입장에서 보면 국가도 동아일보사도 다 같이 가해자들”이라며 “가해자들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강제해고를 안 했다고 발뺌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고심 재판부는 국가기구인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판결에 적용했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