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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부른 것은 언론이 아니다

'폐쇄적 인사·소통 시스템' 정윤회 파문의 본질
이상돈 교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실로 생각"
'언론 탓'하며 청와대 작성 문건 '찌라시' 규정

강진아 기자  2014.12.10 00: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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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한 이후 일련의 언론 보도로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인사개입 의혹 및 비선실세들 간 권력암투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한마디로 ‘찌라시’에 불과한 내용을 언론이 부풀렸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비서진과 비서실장이 잇따라 세계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단적인 사례이다. 특히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언급은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을 여실히 드러낸다. 


조응천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조선일보 인터뷰와 박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을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더라”라며 국·과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대충 정확한 정황 이야기”라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조선일보 e-메일 인터뷰는 진실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방송사 기자는 “(문건 의혹이)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사실이 드러나고 있고, 모든 것이 거짓이라 말할 수는 없다”며 “언론이 아닌 권력의 문제다. 언론이 잘못된 것처럼 뒤집어씌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다수 언론이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는 지난 1일 발언에서 한 발짝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들은 대통령이 핵심을 빗겨났다며 “폐쇄적인 인사·소통 등 시스템이 본질”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12년 박 대통령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실로 생각하는 가상현실을 보고 있다. 상식과 거리가 먼 인식”이라며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인혁당, 정수장학회 문제에 보였던 태도와 똑같은 패턴이다. 극소수 사람들에 의존하는 등 우려했던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도 “폐쇄적인 인간관계가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발언에서 태도 변화의 가능성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정운영 방식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독선만 고집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해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보고된 문건을 ‘찌라시’로 평가 절하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한 종합일간지 논설위원은 “언론은 사회적 통념에 근거해 정부기관에서 나온 문건의 공신력을 믿고 보도 한다”며 “앞으로 국가에서 만든 문건을 모두 일일이 확인해서 쓰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세계일보는 문건이 ‘팩트(청와대 문건)’라는 확신을 갖고 보도한 것”이라며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추구하며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낭기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9일 기명칼럼을 통해 “공직기강을 다루는 담당 비서관실이 문건을 만들었고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문제로 언론으로서 당연히 보도해야 할 사안”이라며 “문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은 자기들 편한 대로의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비서진과 비서실장이 세계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들을 잇따라 고소한 것도 이번 사태를 ‘언론 탓’으로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인식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세계일보를 즉각 고소한 것은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에 대한 비판 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공익적 목적에서 보도된 것인데 압수수색설까지 나온다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