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기자 2014.12.03 14:40:30
박근혜 대통령의 전 측근 정윤회씨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을 통해 비서실장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 나오면서 언론의 보도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 이후 언론들은 정윤회씨,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문건 작성자인 박모 경정 등 사건 관련자들을 집중 취재하며 진실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보도다. 두 신문 역시 이번 사건을 연일 1면 톱으로 올리며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지만, 그 관점이나 내용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얼핏 경쟁 구도까지 읽히는 분위기다. 같이 보수지로 분류되는 동아일보가 이번 사건을 사흘 연속 1면 톱이 아닌 사이드 톱으로만 보도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대다수 언론이 이번 사건을 ‘비선 국정개입 의혹’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보도를 시작한 지난달 29일 유일하게 <라면박스 2개 靑문건 통째로 샜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리고 국정농단 의혹보다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조선은 사설에서도 “현직 경찰이 청와대 시절 작성한 문건들을 박스에 담아 밖으로 들고 나왔고, 동료 경찰들이 외부로 유출했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선 안 될 일”이라며 정윤회 씨 동향 보고 문건을 작성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 박모 경정을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사실상 단정했다. 또한 정 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믿기 어려운 내용”이라며 철저한 진상 규명이 아닌 “단호히 대처”할 것을 청와대에 주문하기도 했다.
정부여당과 궤를 같이 하는 조선일보의 이 같은 프레임은 지난 1일자 보도까지 이어졌다. 조선은 이날 박모 경정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 시작됐음을 알리는 1면 사이드 톱 기사 제목을 <‘정윤회 문건’ 작성한 박 경정 출금>이라고 뽑았다. 사설에서도 “내부 문건의 대량 유출 의혹까지 나오는 청와대 안팎의 기강 문란”을 심각하게 봤다.
그러나 조선의 2일자 보도는 확 달랐다. 조선은 정씨 동향 보고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인터뷰해 “정윤회 씨가 이른바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 중 한 명으로 거론돼 온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지난 4월 연락을 취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대통령은 물론 3인 측근 비서관들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전날 중앙일보의 정씨 인터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조 전 비서관은 또 해당 문건의 신빙성에 대해 “6할 이상”이라며 관련 내용이 ‘찌라시’ 수준이라는 청와대 입장 역시 반박했다.
조선은 이어 2면 머리기사와 기자수첩, 사설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의 불통 행보와 불투명한 국정 운영 방식 문제를 지적했다. 전날까지 ‘문건유출’에 방점을 찍던 논조와 달리 “지금 국민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문건에 나온 대로 정윤회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가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비선 문제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미리 선을 그어버리면 나중에 나올 검찰 수사 결과를 스스로 훼손해 버리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앙일보 보도는 조선일보와 묘하게 대척점에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1일 정윤회씨와 함께 국정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등을 인터뷰해 해당 문건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2일에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지목한 정씨의 주장을 1면 사이드 톱으로 보도했다.
중앙은 문건 유출 경로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박모 경정을 주범으로 지목한 조선과 달리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앙은 1일 5면 머리기사에서 청와대에 근무했던 복수의 관계자 증언을 종합해 “‘청와대 인사 A씨→검찰수사관 B씨→경찰 정보관 C씨’ 순으로 전달돼 일부 언론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중앙의 진상규명 포인트 역시 문건 유출에 맞춰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일자 다수의 신문들은 비선 의혹을 ‘루머’로 일축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과 문건 유출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며 특수부에 배당한 검찰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마저도 “대통령은 이미 결론을 내렸는데 검찰이 이와 다른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검찰이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를 수사해야 하겠지만 작성·유출 경위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문건이 유출된 것은 보안과 기강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지상파 3사는 이번 사건을 신문에 비해 덜 비중 있게 보도했다. 내용도 단순 전달이나 정치권 공방 처리하는 수준이었다. MBC는 세계일보 보도로 관련 의혹이 처음 알려진 지난달 28일 저녁 ‘뉴스데스크’에서 단 한 꼭지로, 그것도 17번째 순서로 보도했다. KBS도 11번째로 다뤘다. SBS는 4번째 뉴스로 보도했지만 문건 내용과 청와대 및 야당 반응을 한 꼭지로 정리한 것은 KBS, MBC와 차이가 없었다. MBC는 29일과 30일에도 한 꼭지씩만 보도하다가 박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한 1일 저녁에야 세 개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KBS는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을 톱뉴스로 시작해 내리 다섯 꼭지로 가장 많은 리포트를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