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아 기자 2014.11.04 23:54:42
“기자가 기사를 못 쓰고, PD가 방송을 못하면 기자와 PD의 존재이유는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느닷없는 교육 발령으로 3일 한국생산성본부에 입소한 MBC 한 구성원은 이렇게 반문했다. “일방적인 통보에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고 헛웃음만 났다”는 그는 “현장을 떠나 교육을 받고 있는 자체가 답답하다. 언젠가는 돌아갈 현장을 생각하며 지금은 참고 견디고 있다”고 했다.
MBC가 지난달 31일 12명의 교육발령을 포함한 110여명 규모의 인사발령을 냈다. 회사는 경쟁력과 수익성 강화를 위한 “최적의 인사 재배치”라고 밝혔지만 MBC 안팎에서는 “참혹한 인사 발령”, “밀실 보복 인사”, “인사 폭거”라는 비판이 거세다.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100여명의 기자와 PD를 ‘신천교육대’로 보내 브런치를 만들게 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교양PD들은 이번 인사발령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과거 PD수첩 등을 통해 권력 비판에 앞장섰던 PD들이 주 타깃이 됐다. 영화 ‘제보자’의 실제 모델인 한학수 PD는 신사옥개발센터, PD수첩 팀장을 지낸 김환균 전 한국PD연합회장은 경인지사로 보내졌다. ‘PD수첩-광우병 편’을 만든 조능희 PD와 2009년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근행 PD, 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민실위 간사인 김재영 PD 등은 프로그램 제작과 무관한 편성국 MD에 발령 났다.
기자 5명 등 12명은 교육 발령을 받았다. 지난 3월 ‘불만제로’로 PD연합회 작품상을 수상한 이우환 PD, ‘PD수첩-광우병편’을 제작한 이춘근 PD, 방송기자연합회장을 지낸 임대근 기자 등 능력과 경력이 검증된 기자와 PD들을 ‘업무실적이 미흡한 저성과자’로 낙인 찍어 교육 보냈다.
파업 이후 보도국 밖으로 내쫓긴 기자들은 이번에 사업 및 기획 관련 부서에 배치됐다. 뉴미디어뉴스국 9명의 기자들은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매체전략국, 경인지사, 보도전략부, 예능마케팅부 등 사업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시사매거진 2580’을 만드는 시사제작국에서도 기자 2명이 신사업개발센터로, 1명이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인사 조치됐다.
회사는 “신설된 조직에 인력을 적재적소 배치”하고 “융복합 역량을 극대화”했다는 입장이지만 당사자에 사전 협의는커녕 일방적 통보로 반발을 사고 있다. 또 교육 발령자들에게도 어떤 실적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뚜렷한 설명이 없어 기준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MBC의 비상식적인 인사발령의 배경에는 올 들어 수백억 규모의 누적적자에 시달리는 안광한 체제의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 실패에서 비롯된 누적적자를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한편 비판적 언론인들을 퇴출시켰다는 메시지를 정권에 보내 흔들리는 경영진의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MBC 한 PD는 “이명박 정권 이래 권력과 회사에 비판적인 정신을 가졌던 기자와 PD에 대한 탄압의 완성판”이라며 “언론기관을 사유화하고 인사권이라는 칼자루를 이용해 비판적인 언론인을 조직 안에서 퇴출시키고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목표로 보인다. 브레이크 없는 비이성적 상황에서 다음단계가 무엇일지 상상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MBC 한 기자도 “현 경영진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 MBC의 색깔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라며 “또 다른 솎아내기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지난해 3월 법원은 2012년 파업 종료 후 본 업무와 무관한 부서에 발령 받은 65명에 대해 사측의 “권리남용”이라며 ‘무효’를 판결했다. MBC본부는 “형식과 내용 어느 것 하나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밀실 개편, 보복 인사”라며 “법과 상식을 통해 그 부당성을 알리고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은 4일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 경영진의 인사 만행을 규탄했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안광한 사장을 비롯한 소수가 비정상의 굿판을 벌이고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하며 MBC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며 “양심 있는 언론인들을 응원하며 경영진들이 이성을 회복하고 MBC를 국민들의 품에 돌려줘야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