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를 당하고 스피커를 만들고 책을 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제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했고, 쿠르베 스피커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펴낸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책 출간기념 청음회가 10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열렸다. 최일구 전 MBC 앵커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북 콘서트는 해직부터 스피커 장인이 되기까지 박 기자의 솔직한 이야기와 쿠르베 스피커의 청아한 소리가 어우러져 가을밤을 장식했다.
2012년 6월 20일. 박 기자가 잊지 못하는 날이다. 10일로 해고 843일째를 맞는 박 기자는 “당시 제가 왜 해고됐는지 몰랐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고 사유는 ‘회사질서 문란’.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준적은 없었다. 당시 징계위원회에서 박 기자가 인사위원이었던 이진숙 현 보도본부장에 사유를 묻자 CCTV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후배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뒤편에 박 기자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후배들을 조종한 배후세력이라는 거죠. 너무 황당해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같은 날에 해고된 최승호 PD와 제가 전직 노조위원장이라는 사실 밖에 추측할 수 없었죠.”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던 최일구 앵커도 지난해 2월 스스로 MBC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2012년 3월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던지고 파업에 참여했다가 정직 3개월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2월 외부 강연을 이유로 또다시 정직 3개월을 받았고 환멸을 느낀 최 앵커는 4일 뒤인 2월 8일 사표를 제출했다. “로비에서 후배들이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을 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미안했다”는 최 앵커는 “언론인으로서 정직하게 살겠다고 파업에 동참했더니 회사는 더 정직하게 살라고 ‘정직’ 3개월을 줬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회사가 저보고 나가라고 한 것 같았다”는 최 앵커에 박 기자는 “선배도 ‘어쩌다 보니’ 거의 해고된 셈”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한량’ 기자로 표현하는 박 기자는 어쩌다 노조위원장을 맡았을까. 그는 스스로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던 기자였다고 설명했다. “2005년에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미국 연수도 다녀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전직 노조위원장 선배가 제게 노조위원장을 제안하더라고요. 전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는데 박 기자처럼 잘 노는 친구가 노조위원장을 해야 후배들도 많이 따른다면서요. 처음에 사양했지만 다들 안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 아내도 무슨 일 있겠냐며 하라고 하길래 딱 2년 고생하고 돌아와서 특파원도 하고 부장도 하자고 생각했죠. 제가 싸움은 못해도 쓸데없는 정의감이 있거든요.”
2007년 노조위원장을 맡은 첫 1년은 조용했다. 변곡점은 2008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그해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 광우병 관련 보도는 촛불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정부는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의 명예훼손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PD수첩 PD들의 강제 구인도 시도했다.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엄기영 사장이 PD들을 보호하지 않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PD들을 피신시켰는데 검찰에서 연락이 왔어요. 경고의 의미였던 것 같은데 주 사찰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노조위원장을 마치고는 평범한 기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엄기영 사장이 해임되고 김재철 사장이 자리에 앉으며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박 기자는 “엄기영 사장과 김재철 사장이 맞붙은 이전 선거에서 김재철 울산 MBC 사장은 부적합하다며 반대했다”며 “이명박 대통령 유세에 쫓아다닌다는 정보가 있어 공영방송에 부적절한 인사라고 성명을 냈었다. 김재철 사장이 그때 첫 번째 원한을 가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재철 전 사장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박 기자는 “지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천시장에 나가려고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는데 대의원 1000여명 중 18표를 받았다”며 “2012년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이 종합일간지 1면에 정치파업을 그만하라는 광고를 냈었다. 하지만 지금 정작 본인은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주 민영방송 고문을 하려다 노조 반대로 좌절됐다.

이날 북 콘서트는 쿠르베 스피커의 청음회와 함께 이뤄졌다. 박 기자는 가을밤과 어울리는 김민기의 ‘가을편지’, 첼리스트 정명화씨의 ‘성불사의 밤’ 첼로 독주, ‘태평가’ 등의 음악을 들려줬다. 최 앵커가 대학 시절 가수를 꿈꾸며 작곡했다는 ‘로켓을 녹여라’ 곡도 선보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중 단연 돋보이는 곡 선정은 심수봉의 ‘그때그사람’이다. “김재철 사장을 생각하며 심혈을 기울여 골랐다”는 박 기자.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그사람~’ 가사가 실내에 가득 울려퍼졌다.
시계추가 20년 전으로 회귀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박 기자는 “과거에는 보도지침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낙하산 사장을 보내는 체제”라며 “낙하산 사장들은 충성할 이들을 보직 간부에 앉혀놓고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KBS, MBC, YTN 등 방송사가 심하다. 인사권을 가진 이들이 교묘하게 심복을 통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앵커도 2012년 1인 시위 당시를 떠올렸다. 최 앵커는 “80년도에는 대학생으로 최루탄을 맞고 돌을 던졌고, 87년에는 기자로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50이 넘은 나이에 다시 거리에 나오면서 정말 과거로 다시 회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MBC 민영화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박 기자는 “MBC는 제2의 공영방송”이라며 “KBS는 수신료를 직접 받지만, MBC는 방송문화진흥회를 통해 공적 운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KBS와 MBC가 공영성을 갖고 지상파 체제를 끌어가고 있어요. MBC가 민간 기업에 넘어가게 되면 무게추가 달라지죠. 제대로 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려면 공영방송 체제가 중요합니다.”

해직 이후 박 기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방을 다녔다. 박 기자는 “대선만 지나면 복직될 줄 알았는데 복직이 안 됐다”며 “김재철 사장은 살아남고 저희는 돌아갈 기약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 앵커도 “사표를 쓰고 난 후 하루 종일 휴대전화가 울리지 않을 때가 많은데 참 서럽고 외롭더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오디오 수집을 취미로 해오던 박 기자였기에 목공을 하면서 스피커 제작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이엔드 스피커 ‘쿠르베’는 그렇게 태어났다. 통상 네모난 스피커가 많지만, 동그란 모양으로 독특하다. 쿠르베가 이름을 알린 것은 JTBC 드라마 ‘밀회’가 한 몫을 했다. “밀회 미술감독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생긴 스피커를 찾아오라고 했다며 미술팀에서 연락이 왔죠. 피아니스트인 주인공들이 음악을 듣는 장면이 꽤 길어 쿠르베도 자연스럽게 이름을 알렸죠.”
이제 쿠르베를 해직기자가 만든 스피커가 아닌 멋지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스피커로 자리 잡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기자 출신이 스피커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술적인 면에 의구심을 갖는 눈빛도 있지만 전문가와 함께 제작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다. 복직 후에는 스피커 사업을 접을 것이냐는 최 앵커의 물음에 박 기자는 “MBC로 돌아갈 것”이라면서도 “처음에는 해직기간 버티는 힘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애착이 많다. 쿠르베를 사랑하고 찾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MBC에 돌아가더라도 회사가 잘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해고무효소송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은 박 기자는 현재 사측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박 기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며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겼다. “삶의 어느 순간 누군가 던진 돌에 맞아 갑자기 인생이 바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기로에 놓였을 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잘되든 안 되든 취미생활이라도 열정을 갖고 하면 저처럼 막다른 길에 부딪쳤을 때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더 클 것입니다. 지금까지 후회는 없습니다.”
최 앵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의 행복이라는데 공감한다”며 “산다는 것이 왜 힘들까 생각해보면 바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하지만 선택보다 더 힘든 것은, 세상이 내가 한 선택을 선택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을 때 인생이 힘든 것이다. 하고 싶고 즐거운 일을 선택하기 바란다”고 클로징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