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말고 어느 누가 남기겠는가. 저런 죽음까지 다스리는 미소를.
그가 기척이 없었고, 그가 기척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나, 그가 승리자다.”
(김정환 시인의 추모시 ‘미소’ 中)
10일 오후 7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의 빈소. 언론계, 시민사회 인사 25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추모의 밤’이 열렸다.
추모제는 지난 9일 보도된 국민TV의 ‘뉴스K’ 리포팅 영상으로 시작하며 고인의 삶의 족적을 되짚었다. 이어진 추모사에서는 고인과 대학 시절, 언론인 시절, 시민운동 등을 함께 했던 이들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했다. 추모사를 듣던 조문객 중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그리움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추모사를 전한 이들은 고인의 언론인 시절을 ‘강단 있는 호걸’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고인과 함께 동아투위에서 활동했던 박종만 선생은 “며칠 뒤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돌이 된다. 그동안 동아투위 위원 19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성유보, 이 친구는 말도 느리고 동작도 굼뜬데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서둘러 떠났는지 모르겠다”고 그리움을 전했다.
박 선생은 “1971년 비상사태 선포 이후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1974년 언론사 최초로 노조를 결성했다”며 “1975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수도 없이 고뇌하고, 울분을 토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성유보는 평소에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앞에 두고서는 정말 강해진다”며 “저력이 대단한 친구라는 것을 항상 느끼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고인과 함께 했던 장기표 선생은 “저는 학창시절 신문이 제 교과서였다. 그 당시에는 동아일보를 많이 읽었는데, 성유보 기자가 누군지 모를 때인데도 그의 기사를 특별히 좋아해서 챙겨 읽었다”며 “기자시절,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는 애도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성유보 선생의 삶과 죽음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고자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편집위원을 지냈던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한겨레신문의 편집위원회는 다른 언론사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신문사 편집회의는 늘어지면 곤란한 것인데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며 “편집위원장이던 성유보 선생을 스타일이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지 대표는 “빛나는 소년의 얼굴을 한 성 선배가 한겨레신문을 빛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들은 고인의 따뜻한 인품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처장은 “성유보 선생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귀하게 여기셨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성의 있게 대해주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 최고의 선생님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유영주 희망래일 사무국장은 “2012년부터 성유보 이사장님을 모셨다. 정말 애정을 많이 주셨고, 고생한 실무자들을 항상 챙기셨다”며 “저만한 경력과 연륜을 가진 분이 이렇게까지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떠나고 안 계시니 죄송한 것 투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3년 전부터 ‘정전협정과 작별하기 평화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고인께서) 내년 광복 70주년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관객 1000명 이상을 모아놓고 콘서트를 열기 바라셨다”며 “저는 자신 없다고 뒷걸음질 쳤었는데, 더 굳게 마음먹고 내년 광복 70주년 콘서트를 열심히 만들어서 죄송한 마음을 지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생전 음악을 좋아하던 고인을 위해 가수 손병휘씨, 노래하는 나들(문진오, 김가영)이 추모 노래를 불렀다. 또한 김정환 시인의 추모시 ‘미소’가 낭송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유족인 부인 장연희씨와 아들 성덕무씨가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성씨는 “장례식장은 아버지를 보내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분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아버지를 많이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일 지병으로 별세한 고인은 1968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유신시절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벌이다 1972년 해직됐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으로 월간 ‘말’을 창간했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 등을 거쳐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초대 편집위원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방송평가위원회 위원장, 희망래일 이사장,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의 장례는 ‘민주·통일 이룰태림, 참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11일이다.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광장에서 영결식을 엄수할 예정이며 고인이 일했던 한겨레신문사와 동아일보사에서 노제도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