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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침해 등 각종 현안에 즉각적인 입장 발표

성명·결의문으로 본 기자협회 50년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부본부장  2014.08.13 13: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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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8.42회…기자 폭행 38건 ‘최다’
유신·5공 언론 암흑기 성명·결의문 주춤
잇단 촌지 파문에 언론인 자정 촉구도
2000년대 들어 사회 전반 영역 확대
박근혜 정부에 해직기자 복직 거듭 촉구


한국기자협회는 반세기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언론계 안팎의 주요 이슈에 관해 목소리를 내며 저널리즘의 좌표를 제시해왔다. 기협이 공식적으로 입장이나 견해를 발표한 결의문, 성명, 건의문 등은 그 자체로 한국 언론사의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비록 권력의 탄압을 이기지 못해 숨죽이던 시절도 있었고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기협의 자화상이자 한국 언론사의 단면인 것이다.

   
 
   
 
1964년 8월 17일 기협의 출범을 알린 창립선언문을 시작으로 지난 50년 동안 한국기자협회 이름으로 선언문, 결의문, 성명, 건의문, 공한(공식서한) 등의 공식 입장을 낸 것은 모두 421회에 이른다. 여기에는 기협 전국대의원대회, 전국시·도지부장회의, 각 부처 출입기자실 대표 등의 결의문도 포함돼 있다.

이는 ‘한국기자 40년사’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결의문과 성명 등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수집 과정에서 빠진 것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시·도별 기협이나 기협 분회(지회)의 성명, 기협이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PD연합회·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과 결성한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의 성명, 신문의 날(4월 7일)에 맞춰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함께 발표해온 ‘우리의 다짐’은 제외했다.

성명 등의 발표 횟수는 한 해 평균 8.42회로 나타났다. 가장 빈번하게 성명을 낸 해는 2007년으로 37회에 이르렀고 2006년과 2008년이 33회씩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에 1966년, 1983년, 2000년, 2001년에는 한 차례도 성명이나 결의문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명이나 결의문을 내용별로 살펴보면 경찰 등의 기자 폭행에 항의하는 것이 38건으로 가장 많다. 기자 폭행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가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경찰이다. 1990년대 이후로는 군인과 일반 공무원 등으로 확대됐고 최근에는 집회나 시위 참가자들도 기자 폭행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언론 관련 법안에 반대하거나 입법을 촉구하는 내용은 35건에 이르러 두 번째를 차지했다. 기자 해고, 징계, 부당인사 등을 비판하거나 복직을 촉구하는 내용은 34건으로 그 다음이었다.

크게 분류할 때 가장 많은 것은 언론 자유와 관련된 사안이다. 정부의 보도 통제나 취재 봉쇄 등과 관련된 성명이 32건, 언론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내용 30건, 정부의 간섭 등을 비판하는 내용 11건 등이다.

기자 구속이나 재판 등과 관련된 사안(21건), 기자 연행이나 피습 등 필화사건(14건), 경찰의 언론사 압수수색이나 기자 감청(7건), 기사에 불만을 품은 집단의 언론사 난입(4건), 기자협회보 복간 촉구(4건) 등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편집권 독립, 낙하산 사장 반대, 공정보도 등을 둘러싼 언론사의 파업투쟁 등은 27건에 이른다.

기자 윤리와 관련해 자정을 촉구하거나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성명은 각각 11건과 6건으로 집계됐다. 남북 기자 교류 촉구는 8건, 정치인의 언론 개입이나 폄훼 발언 비판은 7건, 정부 주요 인사 임명 반대는 7건이다.

기자들의 급여 인상을 호소하는 결의문이나 서한도 7건이나 된다. 공휴일 축소 반대(2건), 언론인금고나 복지연금(2건) 등 임금을 제외한 근로조건이나 복지에 관련된 내용은 비교적 적었다. 여기자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관한 성명과 언론사 통합이나 폐업을 비판하는 성명은 각 4건이었다.

기협의 관심은 언론 자유, 공정 보도, 기자 권익 등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미 FTA, 해외 파병, 재벌 재판, 월드컵 축구, 미군 탱크에 의한 여중생 사망 등의 주요 이슈에 관해서도 입장을 천명했다. 해외로도 시야를 넓혀 북한에 대한 압박이나 이라크 침공 등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가 하면(7건),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공박하기도 했다(3건).

지난 50년 동안 언론사의 판도는 물론 언론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했고 기사를 쓰는 방식이나 기자 사회의 모습도 엄청나게 변모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기협 성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권력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론 보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제하려는 집단과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려는 기자들의 긴장 관계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기협이 탄생한 것도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 기도가 노골화되자 이에 반발한 기자들이 조직을 꾸린 것에서 비롯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책임한 언론의 선동적 보도를 막는다는 구실 아래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해 언론을 탄압하려 하자 야당과 언론계는 거센 반대운동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한국기자협회가 출범했다. 창립 첫해의 성명이나 결의문은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에 맞춰져 있다.

이듬해부터는 성명의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외하면 1960년대에는 구속기자 석방 촉구, 신문사 난입 항의, 기자 피습사건 진상규명 요구, 군의 취재 봉쇄에 대한 항의, 기자에 대한 공무원 폭행이나 폭언 규탄, 지방 주재기자들의 급여 인상 촉구, 증면 발행 요청 등이 대부분이다.

1972년 유신헌법을 통과시켜 영구 집권의 길을 열어놓은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반대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자 1974년과 1975년에 걸쳐 긴급조치를 잇따라 선포했다. 긴급조치의 독소 조항과 공안당국의 위세 때문에 정작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 자체를 반대한 결의문과 성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 대량 해직 사태가 불거져 나왔다. 1974년 10월 24일 편집국장과 관련 부장이 기관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자유언론 선언이 전국의 언론계로 번져 나가자 정부는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 철회를 종용했다. 동아일보는 백지광고로 여기에 맞섰고, ‘동아 돕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정부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 동아일보 경영진은 기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폭력배까지 동원해 항의 농성 중인 기자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1975년 3월 6일 언론자유 선언문을 채택하고 농성에 들어갔다가 해직됐다.

기협은 성명과 결의문 등으로 동아와 조선 기자들을 지원하고 나섰으나 권력의 횡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기자협회보마저 3월 11일 정부에 의해 폐간되는 비운을 맞고 기자사회도 암흑기에 접어든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자 ‘80년 서울의 봄’과 함께 언론계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전두환 장군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확대에 이어 총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며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전두환 정부는 강제적인 언론통폐합과 기자 대량 해직을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언론계를 재편한 뒤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김태홍 회장을 비롯한 기협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돼 조직이 와해되고 기자협회보도 폐간됐다.

또다시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후 기협이 조직을 복원하긴 했지만 1987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때까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6월 항쟁을 전후해서야 언론기본법 반대, 언론자유 수호, 해직기자 복직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듬해에도 언론통폐합 국회 청문회에 맞춰 해직 언론인 원상회복과 언론 학살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협 성명에 담긴 내용이 다양화되기 시작한다. 기자에 대한 해직 등 부당 징계 철회 촉구가 빈번해지고 언론인 금품 수수와 관련해 반성과 함께 자정을 다짐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민영방송 도입을 위한 방송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선거 보도에 관한 준칙, 노동쟁의에 관한 공정보도 원칙, 통일 언론 실천 공동선언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언론 자유 수호나 기자의 권익 옹호에 그치지 않고 미디어 환경 개선이나 저널리즘 질 제고 등에까지 지평을 넓힌 것이다.

2000년대에 와서는 성명의 관심 영역이 사회 전반으로 넓어지고 발표 횟수도 급증한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중단 촉구, 정부의 기자실 운영방안에 대한 항의, 언론사 낙하산 사장 반대, 취재원 보호 원칙 천명, 남북 기자 교류 촉구, 정부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 규탄, 국가보안법 폐지, 정치인의 여기자 성추행 규탄, 삼성그룹 수사 비판, 한·미 FTA 비판, 방송 독립성 보장 촉구, 해직기자 복직 촉구 등이 성명에 담겼다.

2010년대에도 성명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와 언론의 갈등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라는 말로 언론 친화 정책을 표방했으나 낙하산 사장 논란과 언론 통제 의혹을 낳았고 노조 파업과 언론인 해직 사태를 빚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로도 언론과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방송 장악 논란과 해직자 복직 등의 문제로 긴장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부본부장 겸 재외동포부장(기협 50년사 편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