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집행부, 정부 관계자 눈 피해 비밀리 인선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회장단 6명 연행
‘YS 장학생’ 고발…권력과 언론 유착관계 밝혀
97년 ‘대통령선거토론위원회’로 토론문화 정착
지역신문발전지원법등 언론관련 법률 제정 앞장한국기자협회 50년 역사, 그리고 한국 언론사의 산 증인은 바로 기자협회를 이끌었던 역대 회장단이다. 이들은 때로는 굴곡의 현장에서, 때로는 영광의 현장에서 일선 기자들과 함께 했다. 동아투위 위원이던 김병익 회장은 1975년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닷새 만에 풀려났고 그해 말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다. 해직기자였던 김태홍 회장과 한국일보 기자였던 노향기 회장은 1980년 ‘계엄 철폐’와 ‘언론검열 철폐’를 외치다 옥고를 치렀다. 김주언 회장도 1986년 월간 ‘말’ 특집호에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이외에도 회장단의 면면은 다양하다. 이강현, 박기병, 김병익, 이긍규, 정구운, 김주언, 이상기 회장은 2대 이상의 임기 동안 기자협회를 이끌었다. 박기병 회장과 안재휘 회장은 각각 부산일보와 대전일보 출신으로 지역 언론사 출신 기자협회장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회장단은 1대 이강현 회장을 시작으로 42대 우장균 회장까지 총 33명(작고 3명)이다. 본보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역대 회장단 중 11명에게 ‘재임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언론계 사건’과 ‘후배 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3대 김영수 회장“기자협회 창립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희대의 악법인 언론윤리위원회법이 어물쩍 통과되면서 국회 기자실에는 ‘배신당했다’는 격분이 가득 찼다. 이를 계기로 기자들의 권익 단체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창립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 규약은 누가 만드는지 등을 조사하는 기관원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초대 집행부 구성과 기밀유지가 제일 어려웠다. 당시 기자협회 추진위원장이었던 나는 총회에서 뜻을 모아 기자들의 권익 옹호에 힘써줄만한 동아일보 이강현 선배를 초대 협회장으로 모셨다.”
6대 송효빈 회장“언론인은 취재원이 필요할 때 말하는 걸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취재원을 발굴, 필요한 것에 대해 질문해서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몸으로 뛰며 찾아내야 한다. 기자는 하루하루의 역사를 기록하는 직업이다. 역사가 과거의 기록이라면 신문은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후배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춘추필법을 실현했으면 좋겠다. 춘추필법의 전제는 올바른 언론관과 역사관이다.”
10·17대 박기병 회장“10대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언론자유운동을 부르짖다 퇴직을 당한 기자들이 많았다. 이런 여파와 아울러 동화통신, 대한일보, 지방중소신문 등이 문을 닫아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직업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정신’이란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글로 승부하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쓸 거리는 많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도전하는 근성, 부조리에 맞서는 오기와 용기가 기본 덕목이다.”
12~13대 김병익 회장“12대 기자협회장이 된지 일주일 만에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었고 이듬해 3월까지 언론자유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사태가 발생하면서 남산 중앙정보부에 기자협회 회장단 6명이 연행됐다. 회장직으로는 2대에 걸쳐있지만 재임 기간은 반년 남짓이었다. 기자협회는 뒤에서 동아·조선의 자유언론투쟁을 후원하고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했다.”
15·21~24대 이긍규 회장“재임기간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1977년 ‘순직 종군기자 기념비’를 건립한 것이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6·25 동란에 참전한 종군기자는 450여명이다. 당시 전사한 기자 18명 중 외국기자는 17명이다. 기념비에 새겨져 있듯 한국 기자들은 은혜를 아는 국민, 그리고 문필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80년대 기자협회장을 다시 맡으면서 무주택 기자들을 위해 870여채의 기자아파트를 만들어 복지에 힘쓴 것도 기억에 남는다.”
19대 안택수 회장“언론계의 소위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정권과 긴장관계가 심했고, 기자사회 내부에서도 갈등의 골이 깊었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임 회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현재 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언론은, 그리고 후배 기자들은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지키고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올바른 판단을 해줬으면 좋겠다.”
28대 이춘발 회장“1988년 12월 기자협회보를 통해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당시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의 정치·사회부 등 주요 기자들을 포섭해 접대하고 동향을 보고받아 내부용으로 작성한 보고서였다. 그 여세를 몰아 언론청문회를 열고 동아·조선 사주의 해직자 피해 보상 등을 논의했다. 요즘 언론인은 너무 ‘샐러리맨’화 됐다. 자사 이기주의와 정부 편향성이 심하다.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자를 비판하는 데 혈안이 돼 저널리즘을 훼손하고 있다. 60~70년대 기본자세로 돌아가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32~33대 김주언 회장“기자협회보 특종으로 ‘YS 장학생’을 고발한 적이 있다. 언론사 취재정보와 내부동향 등을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건이었다. 이를 통해 권언유착의 실체를 밝혀냈다. 지금도 권언유착이 알게 모르게 잔존하는 것 같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전 KBS 앵커)과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전 문화일보 부장) 등의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국민을 위한 언론이 돼야 하는데 제대로 된 감시·비판을 하지 못하고 ‘기레기’라고 욕을 먹는 현실이 안타깝다.”
34대 안재휘 회장“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북기자교류 특별위원회’를 처음 만든 것이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한국기자협회의 역사를 담은 자료를 보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노무현 정권 때 금강산에서 남북기자교류가 성사됐다. 후임 협회장들이 꾸준히 뜻을 이어온 결과였다. 후배 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항상 기자로서의 사명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독자와 시청자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중심을 지켰는지도 중요하다. 늘 반성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기자가 되길 바란다.”
35대 남영진 회장“1996년 말 노동법·안기부법 개정 파동에 언론계 전체가 일어나서 오랜 파업과 시위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기자협회는 1997년 대선 정국에 ‘대통령선거 토론위원회’를 처음 만들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토론 문화가 없었다.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슈는 항상 일방적이었는데 97년 이후 토론회가 정착됐다.”
38~39대 이상기 회장“재임 당시 지역신문발전지원법과 뉴스통신진흥법 제정에 앞장섰다. 지역 언론이 죽으면 모든 언론이 주류 언론에 종속돼 지역 고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신사를 지원할 법안을 만든 것도 언론사들이 각자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