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전 사장 해임 이후 KBS 사태가 제2막을 맞고 있다. 전 구성원들이 하나 된 지난 8일간의 파업 투쟁의 1차적 목표가 길환영 전 사장 퇴진이었다면, 이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KBS를 독립시키기 위한 ‘진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사내 협회들 중심으로는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 마련 논의가 한창이다. KBS 기자협회는 보도독립과 뉴스개선에 관한 TF팀을 각각 꾸려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보도위원회 운영세칙 개정을 통해 보도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보장, 뉴스 제작 시스템 개선 등의 안을 도출하는 것이 활동 목표다. 최종적으로 기자협회 총회의 추인을 거친 안은 국장단이 수용하기로 했다. TF팀은 새 사장 선임 전까지 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양대 노조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장 선임 제도를 관철시키는 싸움에 주력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여당 추천 이사가 과반(여야 7대4)을 차지하는 현 이사회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규정상 이사회는 길 전 사장이 해임된 날(9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후임 사장을 임명 제청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방송법을 바꿔야만 하는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힘든 상황. 이 때문에 차선으로 제시된 것이 특별다수제와 사장추천위원회다. 재적 이사 3분의2 이상의 동의로 사장을 선출하는 특별다수제는 독립적, 민주적 사장을 뽑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KBS 양대 노조와 사내 16개 직능단체는 16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대표들이 참여하는 사추위를 구성하고 이 사추위가 추천한 사장 후보들을 이사회가 특별다수제로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KBS 이사회는 18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사장 선임 방식과 일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당 측 이사들이 후임 사장 인선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야당 측 이사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일정을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규환 야당 측 이사는 “날짜에 쫓기지 말고 짧은 기간이나마 시민사회와 KBS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길 전 사장 해임 전후로 이뤄진 청와대의 언론 관련 인사는 KBS 차기 사장 선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청와대는 길 전 사장 해임 전날 YTN 출신의 윤두현 홍보수석을 임명하고, 이틀 뒤 극우 성향의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17일에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이자 박근혜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인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해 방송장악 논란이 여전히 진행형이란 사실을 증명했다. 지난 11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폭로한 KBS의 보도 이후 청와대가 KBS 사장 선임을 서둘러 KBS 보도를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그럴 경우 길 전 사장 퇴진을 이뤄내고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KBS 구성원들의 저항이 어느 때보다 거셀 것으로 보여 지난 파업 사태를 넘어서는 파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위원장은 “길환영 전 사장 해임이 청와대와 정권으로부터 사사건건 이뤄진 부당한 지배와 간섭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라면, 당연히 후임 사장을 뽑는 절차부터 제대로 바로잡혀야 한다”면서 “청와대와 국회, KBS 이사회는 총파업과 제작거부로 인한 방송 파행이라는 파국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사장 선임에서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