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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고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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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업이 승리로 끝났다. 사장 퇴진이 KBS 정상화의 선행 조건이라며 전 구성원들이 똘똘 뭉친 결과였다. ‘언론 잔혹사’였던 MB정부 5년간 그토록 많은 언론사 파업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승리는 실로 대단한 성과다. 무엇보다 단 8일간의 파업으로,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싸움을 끝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파업이 끝나자마자 KBS 양대 노조와 협회 등은 후속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별다수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동시에 공정보도와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내적 장치 마련에도 착수했다. 이번을 KBS 정상화와 공정방송 회복의 마지막 기회로 삼는 듯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제도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인적 쇄신이 절실한 이유다. 이번 사태에서 중요한 기폭제가 됐던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 그는 길 사장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김 전 국장 스스로가 KBS 보도 공정성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1년 넘게 길환영 사장의 부당한 보도 개입을 묵인한 대가로 보직을 유지했고, 그 결과 KBS 뉴스는 병들었다. 시사프로그램 제작 개입을 폭로한 장영주 CP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용감한 ‘내부 고발자’이기 이전에 이 모든 사태의 공동 책임자다. 이들의 ‘양심고백’이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제2의 김시곤’, ‘제2의 장영주’가 있을 수 있다. 보직 사퇴에 동참했던 간부들 중에도 진짜 속내를 감춘 채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사장 퇴진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만하면 됐다며 다시 ‘파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파업했냐’는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으려면 관성과 타성에 젖은 체질을 바꾸고, 자율과 책임이 공존하는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 KBS는 사실상 ‘해방구’ 상태다. 사장은 해임됐고, 선거가 끝났으니 정권의 주목도도 전보다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잘 하는 것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곧 후임 사장 인선이 시작될 것이다. 벌써부터 사장 후보 하마평이 들려온다. 길 사장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게 될 후임 사장은 연임을 위해 정권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2차 파업이 재개될 지도 모른다. 남은 싸움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제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다. 하지만 파업 승리라는 값진 경험이 자산으로 남았다. 오랫동안 승리감에 도취되어서도, 그래봤자 달라질 거 없다는 패배감에 빠져서도 안 될 일이다.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희생자 가족과 국민의 분노에서 이번 싸움이 시작된 만큼, 파업 슬로건으로 외쳤던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라는 자각을 잊어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 회장도, 촛불 시민들도 똑같이 수신료 2500원을 내는 국민이라는 것. 그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KBS 정상화의 대장정은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