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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공영방송 사수 및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총파업 중간보고 공동총회’에 참석한 KBS 양대 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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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보도통제의 통로로 지목된 길환영 KBS 사장이 끝내 해임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KBS 이사회가 의결해 안전행정부를 거쳐 보낸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에 9일 서명했다. 길 전 사장은 이사회의 해임제청안 결의에 반발하며 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대통령의 해임안 재가로 결과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길 사장 해임은 노조와 직종, 직급을 불문한 KBS 전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로 사장 퇴진과 방송 독립을 요구한 결과라는 점에서 한국 방송사에 기록될만한 사건이다. KBS 양대 노조는 2009년 노조가 나뉜 뒤 처음으로 공동 파업에 나섰고, KBS 사내 모든 협회들은 제작거부 결의로 투쟁의 동력을 끌어올렸다. 360명이 넘는 간부들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을 내던진 것도 KBS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결국 길 사장은 조직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하다는 것이 주요 사유가 돼 해임됐다. 이사회 표결 결과는 7대4. 이길영 이사장을 포함한 여당 측 이사 3명이 길 사장 해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길 사장 해임은 KBS 전 구성원들의 염원을 모은 방송 독립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KBS 이사회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보도 개입 논란을 길 사장 차원에서 무마하기 위해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해임안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KBS 이사회 여당 측 이사들은 애초 야당 측 이사들이 주장했던 해임 사유 중 ‘보도통제’ 의혹 관련 부분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번 KBS 사태 도화선이 된 청와대의 보도통제 의혹은 해임 사유에서 빠진 채 부실한 재난보도와 경영 실패 등 길 사장 개인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정권과 이사회가 이미 후임 사장 인선을 그려놓고 길 사장 해임안을 처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홍성규 전 방통위원, 권혁부 전 방통심의위 부위원장,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 등이 사장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모두 친여 성향 인물이다. 현재 7대4로 기울어진 이사회 구조로는 친정부, 친여 성향의 사장 선임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야당과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사장 선임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대선 공약 사항이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침묵만 지키고 있다.
KBS 사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화를 제도화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지만, 법안 시행 시점은 8월 말부터여서 이번 보궐 사장 선임에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현행 제도로는 어떤 사장을 선임하더라도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KBS 양대 노조가 길환영 사장 해임을 싸움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양대 노조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포함해 독립적인 사장 선임 제도 관철을 요구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공정보도와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 마련에 착수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보도와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주요 국장들에 대한 직선제를 비롯해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새롭게 마련할 것이며, 이를 수용할지 여부는 후임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적합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 협회 차원의 대책 마련도 분주히 이뤄지고 있다. KBS 기자협회는 TF팀을 꾸려 보도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초안을 만들고 사측과 구체적으로 협의 중이다. 지난 9일에는 기자 총회를 열고 취재 및 제작 시스템 전반에 관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조일수 기자협회장은 “외부에서 뉴스 이렇게 하려고 파업했느냐는 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고 안에서도 불안해 한다”면서 “‘다른 뉴스’를 해보겠다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서로 다른 의식 수준의 격차를 메워가는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오훈 새노조 위원장도 “지배구조를 바꾸고, 공정방송을 위한 내부 장치를 새로 만들고, 독립적인 사장 선임과 내부의 인적쇄신 등 우리 앞에 놓인 숙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갈 것”이라며 “뉴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공영방송 KBS가 왜 존재하는지 스스로 입증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