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 사장 해임제청안이 가결됐다. KBS 이사회는 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길 사장 해임제청안을 표결에 붙여 찬성 7표, 반대 4표로 가결시켰다. 길 사장 해임제청안이 가결됨에 따라 KBS 양대 노조는 8일째 이어온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현업에 복귀할 방침이다.
이사회의 해임제청안 가결은 사실 예견된 결과였다. 길환영 사장이 정권과 유착해 보도와 제작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제작 자율성을 침해한 사실 등이 여러 증언들을 통해 드러났다. 특히 이 같은 폭로가 길 사장이 직접 임명한 보도국장과 공정방송위원회 사측 간부 등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 컸다. 이에 노조와 직종, 직급을 불문한 KBS 대다수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로 길 사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KBS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KBS 이사회 야당 측 소수 이사들도 지난달 19일 길 사장 해임제청안을 제출하며 퇴진을 압박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마라톤 회의 끝에 해임제청안 처리는 6·4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다. KBS 양대 노조는 즉각 다음날 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지난달 19일부터 KBS 기자협회가 제작거부에 들어가면서 KBS 9시 뉴스가 3분의1 토막 나고 결방이 잇따르는 등 뉴스 파행은 이미 보름 넘게 이어져 왔다.
길 사장은 연일 강공으로 나왔다. 지난 2일 특별담화를 통해 노조 파업에 대해 엄단 대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보도본부 부장 등 자신의 퇴진을 요구한 간부들을 상대로 ‘보복성 인사’를 단행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급기야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 후임으로 임명됐던 이세강 보도본부장이 임명장을 받은 지 2주 만에 사표를 제출했고, 보도본부 국장급 인사 3명도 줄줄이 사퇴했다.
길환영 사장 곁에는 사실상 아무도 남지 않았다. 리더십은 물론, 조직에 대한 통제력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하루만인 5일 다시 이사회가 열렸고 표결 끝에 7대4로 해임제청안이 가결됐다. 당초 가결되더라도 6대5 정도로 갈릴 것으로 전망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예상 밖의 결과다. 여당 측 이사 7명 중 3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 표결 직후 여당 측 양성수 이사는 이사직 사임 의사를 밝히며 퇴장했다.
이사회의 해임제청안 가결로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해임 절차만 남겨두게 됐다. 박 대통령이 KBS 이사회의 해임제청안을 재가하면 길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난다. 대법원은 지난 2008년 강제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제기한 해임 무효 소송에서 KBS 사장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해임권도 갖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해임제청안은 가결됐지만, 앞으로도 산 넘어 산이다. 박 대통령이 길 사장을 해임한다 하더라도 후임 사장 인선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정방송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할 일이 많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도 이날 해임제청안 가결 직후 낸 성명에서 “길 사장의 퇴진은 우리 싸움의 목적지가 아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며 “앞으로 길 사장을 비롯한 수많은 부역 간부들이 정권에 갖다 바쳤던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지난한 싸움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새노조는 해임제청안 가결에 대해 “이사회의 이번 결정은 ‘공사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의결기관’으로서의 방송법상 이사회의 권능에 충실한 결정”이라며 “길환영 사장뿐만 아니라 앞으로 임명되는 그 어떤 사장이라도 보도나 프로그램에 부당하게 개입할 경우 사장직에서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공영방송 KBS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의 방송 KBS를 정권의 방송으로 망가뜨린 길환영 사장이 해임된 오늘이 KBS 역사에서 방송 독립의 날이 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면서 “훗날 한국 방송 역사에서 우리의 이번 싸움은 정권에 부역해 온 사장을 사내 구성원들의 손으로 직접 끌어내린 ‘명예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며, 우리는 이번 투쟁의 경험과 결의를 바탕으로 앞으로 그 어떤 정권과 사장으로부터도 방송 독립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