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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취재거부 당하는데 데스크는 '팩트 찾아라' 압박

[세월호 참사, 언론의 길을 다시 묻다] (3)재난취재 시스템 바꾸자

김고은 기자  2014.05.28 14: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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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관훈클럽 주관으로 ‘재난보도의 현주소와 과제-세월호 보도를 중심으로’ 세미나가 열렸다.  
 
5년차 이하 젊은 기자들 위주 현장 파견
취재기자에 대한 심리상담치료 있어야


‘더 빨리, 더 많이’. 대형 사건사고나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언론이 답습해 온 행태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확함보다는 신속함이 우선이었고 사후약방문 식으로 지적받곤 했던 취재기자 사전교육이나 전문성 부재 문제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 결과 언론 스스로 무리한 취재 경쟁에 몰리면서 ‘기레기’라는 비난을 자초했고, 현장에서 냉대와 조롱을 오롯이 감수해야 했던 기자들은 직업에 대한 회의와 함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건국 이래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세월호 침몰 사고. 유례를 찾기 힘든 참사였던 만큼 많은 언론사들이 사고 초기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취재 인력을 파견해 사고 현장을 생중계했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그렇듯이 이번 세월호 참사 현장에도 사회부 사건기자들이 집중 배치됐다. 15년차 이상의 차장급 기자나 국장급 기자가 현장 취재단장을 맡는 경우도 있었지만, 매일 현장에서 피해자 가족을 맞닥뜨리는 것은 주로 5년차 이하 젊은 기자들이었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진도행 버스와 기차에 몸을 실은 그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역대 어떤 재난 현장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리면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기자들은 ‘캡’이나 본사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닥치고 취재’를 해야 했다. 생존 학생을 붙잡고 친구가 어디 갔냐고 묻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고 당시 영상이나 사진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재난보도 세미나에서 강은지 동아일보 기자는 “슬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는 공감했지만 데스크로부터 최대한 취재를 많이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면서 “현장 기자들이 팩트를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리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어린 연차의 기자들은 데스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박기용 한겨레 사회부 기자는 “사회부 사건기자들이 연차가 낮은 것이 문제였다”면서 “연차가 낮은 기자들은 데스크의 지시가 취재원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더 급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문제였다. 박소영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도 “현장에서 물고 오는 정보들을 허리급 되는 기자가 종횡으로 엮어서 분석적인 기사가 실시간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쉬웠다”며 “사연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무리하게 취재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무리한 보도라든가 피해자들의 불만을 사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언론도 있었지만, 현장 상황이 바쁘게 돌아간다는 이유로 거의 공유조차 되지 못했다. 강은지 기자는 “재난보도준칙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명쾌하게 알지 못했고, 어디까지 취재를 해야 한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자신에게 없었다”고 말했다. 박만원 매일경제 사회부 지방팀장도 “상식선에서 알만한 내용은 있지만 현장에서 공유되지 못하고 전파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그랬다. 당시 대다수 언론은 사전교육이나 기본적인 안전장비 없이 취재진을 보내 기사를 만들어내는 데 급급했다. KBS는 위험지역 취재 매뉴얼을 갖추고 있었지만, 취재 현장에서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결국 당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지역을 취재한 KBS, MBC 기자 30명이 방사능에 피폭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유례없이 극에 달하면서 기자협회 차원의 보도준칙 제정과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이 현실화 단계까지 왔다. 기자들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취재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기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들에 대해 심리상담치료를 실시했고, 한겨레도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용식 문화일보 논설실장은 “기자윤리와 취재준칙 문제를 정비하고 실효성을 높이는 조처가 따라야 한다”며 “언론 각계에서 다양한 노력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