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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선배기자들 "미안하고 반성한다"

공영방송 KBS 기자 자존감 '기레기' 소리 들으며 무너져

강진아 기자  2014.05.14 14: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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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보도 반성문’ 고백

“막내기자로서 갖고 있는 신념을 아직 저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과 아홉 달 전이었다. 입사 전 최종면접에서 한 간부가 물었다. “보도의 정확성과 신속성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한가.” 당연히 공영방송으로서 ‘정확성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대형 사건·사고의 경우 오보는 치명적이고, 재난주관방송사로서 신뢰할 수 있는 방송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월16일 이후, 돌아온 건 자괴감과 무력감이었다. ‘오보와 속보 경쟁, 무리한 지시와 연출된 화면…. 과연 기자란 무엇인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2011~2013년 입사한 KBS 막내기자들이 세월호 보도를 반성하고 사과를 촉구하는 글을 지난 7일 사내 게시판에 올리며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도와 안산 등 현장에서 뛴 38~40기 10명의 기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를 전했다.

“KBS를 어떻게 믿어요?” 안산에 있던 한 기자는 13일간 매일 이 말을 들었다. 팽목항에 있던 기자는 따가운 눈총과 질타에 KBS잠바를 입는 것이 두려웠다. 어느새 취재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자와 쓰레기를 합해 지칭한 ‘기레기 중 기레기’가 돼 있었다.

‘사연’을 찾고 ‘뉴스’를 만드는 데 치중해 정작 실종자 가족들이 지적하는 현장의 문제점이나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획 보도는 부족했다. A기자는 “연일 눈물 짜내기식 인터뷰를 지시 받았고, 시청률에 급급해 유가족들의 감정과 사생활을 드러내는 데만 공력을 쏟았다”고 했다. B기자도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다”며 “하지만 위에선 ‘아이템이 실종자 입장에 너무 치우쳤다’고 했다”고 밝혔다.

9시뉴스 톱을 장식한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방문 보도는 연출된 모습 같았다. 대통령의 위로만 있을 뿐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는 없었다. 기자들은 “우리 뉴스는 왜 대통령에 책임을 묻지 않는가”라며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라”고 촉구했다.

막내기자들의 반성문에 선배들은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실명을 걸고 연대 성명을 낸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게 분명했다. 15년차 A기자는 “취재현장에서 후배들이 느낀 자괴감과 괴로움을 보고 안타깝고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며 “선배들의 통렬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고 했다. 6년차 B기자도 “KBS 기자라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이라며 “세 기수가 다 같이 목소리를 낸 유례없는 일에 놀랐고,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선후배할 것 없이 기자들 다수가 취재현장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C기자는 “여러 현장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며 공유가 잘 안 됐다”며 “보도 방향에 대한 논의가 없다보니 혼란스러웠고 시간에 쫓겨 비판과 반성 없이 경쟁적으로, 지시대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A기자도 “현장이 아닌 보도국 수뇌부 머리에서 나온 아이템을 일방적으로 하달 받았다”며 “토론이 불가한 구조에서 현장성 없는 리포트에 대한 문제 인식은 팽배했다”고 말했다.

KBS의 보도 방향성과 제작시스템의 한계는 드러났다. 결국 저널리즘의 기본을 되살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해설위원은 “결국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 윤리 문제”라며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수술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개선될 수 없다”며 “일회성 반성이 아닌 재난보도 훈련과 팩트체커 등 시스템과 장치를 갖추고 고쳐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