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좀 꺼져 주세요.”
천막이 살짝 젖혀지더니 날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진도 팽목항에 차려진 가족대책본부 상황실. 소리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담요로 가림막을 해놓고 대책회의를 하던 실종자 가족들이 주위에 있던 기자들을 쫓아냈다.
“우리 애들을 찾는 게 목적이지 당신들 특종 시켜 주는 게 목적이 아냐. 기자 분들, 우리 살려주지 않아요. 우리가 정부와 민간의 도움을 받는데 당신들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멀리멀리 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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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 열흘째. 언론에 대한 냉대와 불신이 팽배한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들이 실종자 가족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며 조용히 취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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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열흘 째.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돌려주지 않는 야속한 바다 앞에서 기자들은 그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곳에서 기자들은 냉대와 불신 속에 숨죽인 채, 그러나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상파 라디오 방송사 한 기자는 “이곳에선 노트북을 쓰는 기자들이 없다”며 “이것 역시 새로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팽목항에 있는 기자들은 언론사별 텐트나 기자 15명 정도가 앉을 수 있도록 마련된 기자석 외의 다른 곳에서는 노트북을 펴들지 않았다. 수첩에 뭔가를 받아 적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티 안 나게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거나 머릿속에 기억하는 등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을 상대로 굳이 ‘취재’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곳에서 기자들은 ‘묻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사실 뭘 물어볼 수 있겠나. 자식을 잃은 심경이 어떠냐고 물을 수 있겠나. 그냥 조용히 듣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도 “취재의 경계가 없어졌다”며 “얘기를 들어드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펜기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장비가 필수인 사진기자나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딜레마에 놓였다.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이 유독 카메라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탓에 이들은 거의 ‘공공의 적’이다. 한 사진기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주저앉은 채 통곡하는 한 할머니의 뒷모습을 담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손녀로 보이는 가족은 “기자들이 할머니 다 찍어갔어. 카메라를 뺏어버리든가 해야지”라며 가시 돋힌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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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 열흘째. 언론에 대한 냉대와 불신이 팽배한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제 일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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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다보니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지난 24일 저녁 이후로 가족 상황실에서 10미터가량 떨어진 중계차 부근에 포토라인을 만들고 안쪽으로는 접근하지 않고 있다. 사진기자들도 조용히 돌아다니다 슬며시 한두 장 찍는 정도다. 경기도의 한 일간지 사진기자는 “처음 왔을 땐 좋은 그림 얻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돌아다니다가 슬쩍슬쩍 하나 찍고 만다”며 “가족들이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와 불신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욕하면 욕하는대로, 내치면 내치는대로 묵묵히 견딘다. 종합일간지 한 2년차 기자는 “정부와 언론에 대한 가족분들의 불신이 완전히 이해되기 때문에 전혀 억울하지 않고 그저 죄송하다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종합일간지 4년차 기자도 “가족들의 얘기를 듣고서야 저들의 반응이 이해됐다”고 말했다. “정신과 교수가 그런 말을 하더라. 저들에게도 샌드백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정부든 기자든 그냥 맞고 있으라고. 지금 맞는다고 해서 인생에 크게 지장 없지 않으니 그냥 참으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나았던 것 같다.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기자는 없을 거다. 가끔 실수하고, 우리가 자성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러면서 배워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