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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일 오전 정홍원 국무총리가 진도 실내체육관에 도착한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모여 있다. (김희영 기자) | ||
진도 숙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진도에서 실내체육관과 팽목항 등 취재 접근성이 좋은 곳에 숙소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고 규모가 큰 만큼 실종자 가족을 비롯해 언론 관계자와 자원봉사자까지 대거 내려와 방이 동났기 때문. 몇몇 기자들은 다행히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지만 방을 찾지 못한 기자들은 해남, 목포 등까지 진출했다. 방이 있는지 묻는 전화에는 ‘있다’고 했다가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방송사 카메라 기자는 “아침에 잠시 자리를 비워도 방을 뺏긴다”며 “어제는 방을 뺏겨 차에서 잤다”고 말했다. 종편 한 기자도 “타사 아는 기자에게 부탁해 다음날 올 사람들의 방을 빌려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거나 2~3시간 겨우 몸을 뉘었다. 펜션, 모텔, 민박 등을 잡고 주로 씻고 나오는 정도. 아예 방 잡는 것을 포기한 기자들도 있다. 최대한 현장을 지켜보고자 실내체육관에서 밤을 새거나 회사 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회사 차에서 자거나 새벽에도 체육관에서 계속 밤을 샌다”고 말했다.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고된 일 중 하나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종편 한 기자는 “팽목항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20km 밖”이라며 “봉사하는 분들이 없었다면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아입을 옷도 없이…당일 급파된 기자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갑자기 전해지며 기자들도 안산, 목포, 진도 등 각 현장으로 급파됐다. 당일 갑자기 내려온 기자들은 거의 맨몸으로 진도에 내려왔고, 미처 갈아입을 옷을 챙기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때문에 신문기자들은 토요일자 신문을 마감한 금요일 밤, 잠시 서울에 다녀왔다. 일요일자 신문이 발행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짐을 챙겨 토요일 다시 진도로 돌아온 것.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운 서거차도에 들어간 한 종합일간지 기자도 섬 주민들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이들이 처음 들어갔던 서거차도에 16일 취재차 급하게 파견됐지만 섬에는 민박도 식당도 없었다. 바로 나올 줄 생각했던 차에 더 머물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진 것은 달랑 현금 만원. 이 기자는 “하룻밤을 묵게 해준 주민센터 관계자와 목사, 출장소 소장, 의경 등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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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기자들은 바닥에 스티로폼과 담요를 깔고 앉아 빈 박스를 책상으로 활용해 기사를 작성했다. (김희영 기자) | ||
바닥에서, 식당에서…노트북 펴기 위해 궁여지책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일대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기사를 쓸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 궁여지책을 동원했다. 기자들이 머물던 실내체육관 2층에는 경기 관람용 좌석이 전부. 일부 신문사 기자들은 이 의자에 앉아 무릎에 노트북을 펴고 기사를 썼지만, 현장에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는 기자들의 경우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대부분 기자들은 바닥에 스티로폼과 담요를 깔고 앉아 빈 박스를 책상으로 활용했다. 일부는 창가에 노트북을 놓고 선 채로 기사를 썼다.
팽목항은 장소가 협소하고 환경이 열악해 ‘어디든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마땅히 앉아 있을 곳이 없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쓰는 경우는 비일비재, 항에 유일한 식당 1층이나 긴급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전력 천막, 자원봉사 천막 등 비어 있는 곳에서 노트북을 두드렸다. 방송기자들은 중계차량이나 장비를 놓은 천막을 활용했다. 팽목항에서 만난 한 통신사 기자는 “사고가 발생하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차량이 없어 쉴 곳이 없다”며 “주차장이 멀어 차 안에서 쉬기도 힘들다. 계속 (대합실 부근 항 앞쪽에서)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쉽사리 노트북을 꺼내는 기자는 없었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노트북에 회사 이름이 써져있는 것을 보고 항의도 수차례 받았다”며 “‘기사 똑바로 쓰라’며 호통을 치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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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팽목항 선착장에서 카메라 기자와 스텝들이 바닥에 앉아 해경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진아 기자) | ||
24시간 돌아가는 중계차…기자들은 12시간 대기
“여기 팽목항에는 아직 구조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방송사들의 중계 경쟁도 치열했다. 각 방송사들이 특보체제로 전환되며 현장에서는 24시간 중계차가 돌아갔다. 새벽부터 밤까지 기자들은 계속 대기 상태로 1시간에 1~3번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팽목항에서는 SBS와 뉴스Y, TV조선 등이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았고, KBS와 YTN, MBN, jtbc, 채널A, KBC 등은 중계차 위나 뒤, MBC 등은 항구 옆 등대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24시간 하는 경우도 있고, 한 사람이 대개 10~12시간 중계하다보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 중계 교체도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옥상에 자리를 잡은 곳들은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웠다. 추위를 견디며 혹여 긴급한 상황이라도 발생할까 화장실에 오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일부러 물을 적게 마셨고 밥도 먹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 방송사 기자는 “계속 한 자리에 대기해야 하니 너무 추웠다”며 “실시간 중계가 이뤄지면 취재를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럴 경우 다른 기자들과 협업이 잘 돼야 한다. 취재를 못하는 상황에서 중계를 하다 보니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갈증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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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사들은 팽목항 건물 옥상에 중계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강진아 기자) | ||
사선 빌려 사고 해상으로...현장의 무게감
언론들은 사선을 빌려 사고 현장인 해상에 들어갔다. 17일엔 해경정을 타고 60여명의 기자들이 해상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주로 사선을 이용해 영상 카메라 기자나 사진기자가 들어갔다. 특히 방송사들은 사고 해상에서의 실시간 중계를 위해 하루에 1~2번씩 해상을 오갔다. 팽목항에 사고 해상으로 가는 화물 선박에 방송사 차량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면 실종자 가족들은 먹먹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바라봤다.
중계를 하는 기자를 포함해 30여명의 스텝들이 해상에서 24~72시간 머무르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먹을 것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전하는 만큼 그 무게감이 더 컸다. 많은 인원이 나가지 못한 방송사들은 카메라 기자들이 해상에서 실시간 송수신 장치가 있는 백팩으로 라이브 영상을 보내왔다. 사고가 난 초기 사선은 70~80만원대였지만 많은 언론과 실종자 가족들이 사선을 빌리며 150만~200만원대까지 가격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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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 진도 팽목항에서 사고 해상으로 나가는 선박에 YTN 차량과 방송장비들이 실리고 있다. (강진아 기자) | ||
지역일간지, 공동취재단 꾸려 합동 취재
경인일보, 광주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등 지역일간지들은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을 꾸려 진도를 취재 중이다. 방송사나 규모가 큰 신문사들은 서울 본사는 물론 각 지역 지역주재 기자들이 합류했다. 하지만 타 지역에 주재기자가 없는 지역일간지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이 큰 사건이 터지면 공동취재단을 꾸려 합동 취재를 한다.
이들은 공동뉴스룸 사이트를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 뉴스룸을 통해 강원일보와 제주일보 등 현장에 인력을 투입하지 않은 지역일간지들도 완성된 기사를 제공받을 수 있다. 또 각 언론사의 기자 리스트를 공유해 전화로 필요한 자료를 받기도 한다. 지역일간지의 한 수습기자는 “타 지역에서는 더욱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공동 취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