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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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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슬픈 아픔에 서해훼리호의 기억이 떠오른다. CBS 입사 2년차 신참 기자였던 1993년 10월의 가을. 수십여 대의 각 언론사 취재차량들은 사이렌을 켜고 꼬리에 꼬리를 문 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갓길을 내달렸다. 어서 빨리 전북 부안에 도착해 위도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위도항 방파제 인근에 위치한 조그마한 상점 2층은 서울에서 내려간 취재진들이 몰리면서 이내 ‘기자실’이 됐다. 292명의 소중한 생명이 숨진 대참사의 비보를 전하는 데 기자들은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사흘쯤 지났을까. 서해훼리호의 백운두 선장이 사고 당시 홀로 탈출해 인근 섬이나 육지로 도망갔다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백 선장을 보지 못했다는 일부 생존자의 진술이 나오는가 하면 사고 직후 인근 항구에서 백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까지 이어지면서 경찰은 그를 지명수배하기에 이르렀다.
구조작업과 관련된 뉴스기사는 어느새 선장 추적 기사로 돌변했다. 그래도 일부 언론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과연 그럴까’하는 신중한 의심을 가졌지만 상당수 언론은 경쟁적으로 ‘선장 찾아내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백 선장의 차가운 시신은 사고 발생 닷새 뒤 침몰 선박 2층 통신실 안에서 발견됐다. 당시 무책임한 언론 보도로 백 선장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더미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경찰 조사 결과 백 선장은 배가 침몰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구조 요청을 위해 조타실에서 뛰어나와 통신실로 건너간 것이었다.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승객의 목숨을 지키려다 의로운 죽음을 맞은 백운두 선장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전까지 서해훼리호 사고가 최악의 해상 참사였다면 ‘백운두 선장 이야기’는 언론의 가장 부끄러운 오보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기자에게 오보의 위험성은 항상 따라 다닌다.
아무리 확인을 거듭했다 하더라도 취재원의 잘못을 포함해 다양한 오보의 원인이 있다. 그러나 기자의 섣부른 판단이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 가벼움이 오보의 빌미가 됐다면 또 그로 인해 희생자 가족들에게 슬픔과 충격, 혼돈을 야기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공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언론의 무한 책임 때문이다. 특히 재난보도의 경우 뉴스의 무게중심은 시청자나 독자가 아니라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보도와 관련해 방송사들이 연이어 시청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것도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그릇을 깨뜨릴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깨뜨리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잘못이고 크게 혼쭐이 난다.
국가적 재난에 온 국민이 슬픔과 분노에 빠져 있는 지금은 언론이 그릇을 깨뜨려서는 안되는 때이다. 아무리 닦은 그릇이 많아도 용서받기 어렵다. 우리의 가벼움을 무겁게 반성하는 오늘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