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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도 모자라 선정성 경쟁…신뢰 잃은 언론

세월호 참사, 부적절한 보도로 여론 뭇매

김창남 기자  2014.04.23 14: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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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에서 인양된 시신이 19일 밤 진도군 팽목항 선착장에서 신원확인소로 옮겨지는 가운데 기자들이 촬영을 하고 있다. (강진아 기자)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을 포함해 승객 476명(22일 기준)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언론보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과열된 취재 경쟁 탓에 무리한 인터뷰와 부적절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실의에 빠진 생존자·실종자 가족 등에 대한 ‘2차 피해’는 물론이고 사태 수습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매번 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보도가 문제됐지만, 당시에만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뿐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17일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 사고’에서도 일부 신문이 붕괴된 리조트 건축 자재 밑에 깔린 여학생의 얼굴 사진을 여과 없이 보도(18일자)해 독자들의 눈총을 샀다. 무엇보다 과열된 취재경쟁 때문인데, 최근에는 언론사의 트래픽 경쟁까지 더해 도를 넘고 있다.

정부 발표만 믿었다가 대형 오보
피해상황 집계나 구조·수색활동 등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오락가락하고, 이에 따른 보도 역시 정확치 못하면서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지난 16일 안산 단원고 ‘전원 구조’ 오보를 비롯해 17일 세월호 ‘공기주입 시도’ 오보, 18일 ‘선체 진입’ 오보 등은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 부재 속에 나온 잘못된 발표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초래한 측면이 크다.

이런 소식은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는 실종자 가족들에겐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내용이어서 정부나 언론 모두 신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사고 초기 부적절한 인터뷰와 보도가 잇따르면서 언론의 신뢰에도 금이 갔다.

실제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첫날인 지난 16일엔 MBC(“2달 전 안전검사 이상 없었다”…추후 보상 계획은), 조선닷컴(세월호 학생들은 동부화재보험, 여객선은 메리츠 선박보험 가입) 등은 탑승객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금을 운운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JTBC도 이날 ‘세월호’의 생존자인 안산 단원고 여학생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학교 동급생의 사망 사실을 알렸다 논란이 커지자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보도담당 사장)가 직접 사과했다.

SBS는 지난 16일 ‘세월호 구조된 6세 어린이 “혼자 나왔어요” 눈물’에서 구조된 6세 어린이를 인터뷰한 영상을 내보냈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고, 뉴시스는 같은 날 안산 단원고 숨진 고교생 책상과 노트 등을 찍은 사진을 게재해 누리꾼들의 원성을 샀다.

MBN은 18일 자신을 민간잠수사로 소개한 홍모씨와의 인터뷰에서 “해양경찰청이 민간 구조부의 작업을 막고, 다른 민간 잠수사가 세월호에 생존자를 확인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발언을 여과 없이 전했다가 사실과 달라 이동원 보도국장이 이날 오후 사과했다.

KBS도 지난 18일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 확인’ 보도를 내보냈으나 이 역시 사실과 달랐다.
일부 언론은 온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한 이번 참사를 가지고 기사 어뷰징(동일 뉴스콘텐츠 중복전송)과 검색어 기사 생산에 나서 입방아에 올랐다.

이투데이는 지난 16일 온라인판에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 기지국 증설 “잘 생겼다 잘 생겼다”’ 등을 올렸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 지난 19일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들이 이용욱 해양경찰청 정보수사국장의 브리핑을 촬영하고 있다. (강아영 기자)  
 
속보 경쟁으로 언론 신뢰 타격

주요 언론들이 재난사고가 날 때마다 상식에서 벗어난 보도행태를 보이는 것은 정확성보다는 속보 경쟁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눈 뜨고 물 먹을 수 없다’는 압박감 탓에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인데 이런 보도가 언론의 생명인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이런 경쟁적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생존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 등에겐 ‘2차 폭력’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 대형오보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는 게 언론학자들의 중론이다. 지난 1993년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서해 훼리호 선장이 생존해 도주했다고 보도했다가 배 안에서 시신이 발견돼 사과문을 게재했던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주요 언론이 ‘정부의 잘못된 발표 탓’이나 ‘다 같이 오보를 했다’는 것을 면죄부로 삼는다면 똑같은 문제는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재난 현장서 과열된 취재경쟁의 완충재인 ‘재난보도 준칙’이 필요한 데도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곤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 사마다 사고 현장에 보내는 기자들에게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을 자극할 만한 취재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시키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현장 기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신문사 사회부장은 “사고 현장에 나가는 기자들에게 자칫 취재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상황과 분위기를 보고 판단하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재난보도 준칙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고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고 현장서 이를 준수하는 게 취재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모든 언론들이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재난보도 준칙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앙대 성동규 교수는 “종편 출범 이후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재난보도에서도 선정적인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며 “재난보도 준칙 제정과 함께 이에 대한 기자들의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