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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우리는 기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을 가다]"언론 못 믿겠다" 가족들 절규에 부끄러워

강진아 기자  2014.04.23 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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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도 팽목항 민간 잠수부 구조대 천막 벽면에는 생존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그곳에 한 기자도 안타까운 심정을 남겼다. (강진아 기자)  
 
취재수첩 꺼내고 사진 찍기 어려운 분위기


“취재 5일째입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부디 꼭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19일 진도 팽목항 초입 민간 잠수부 구조대 천막 벽면 한 귀퉁이,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한 기자의 쪽지가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누구라도, 무엇이든, 어디에서든 취재·보도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다. 그래서 눈물을 보일 순 없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일주일째, 실종자의 생존 소식은 들리지 않고 22일 현재 사망자 수가 120명이 넘었다.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운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일대, 가족들의 절망은 한없이 커져갔고 기자들도 마음으로 함께 울었다.

“찍으면 나가요? 어차피 내보내지도 않을 거 왜 찍어요?”
“언론도 못 믿어요. 학부모들이 애타게 뭘 요구하는지 하나도 안 나오잖아요.”
사고 사흘째인 18일, 실종자 가족들이 밀집한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자들 누구도 취재수첩을 꺼내지도, 카메라를 들지도 못했다. 카메라가 눈에 띄기만 해도 고성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생사가 중요하다. 내 새끼가 물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 무슨 소용이냐. 정부도 언론도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 언론에서는 대규모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지만 현장의 체감은 달랐다. 가족들은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진척은 없었고 당국자들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 분노는 언론까지 미쳤다. 현장에 설치된 화면으로 뉴스를 보던 학부모들은 “사실도 아닌데 이게 왜 뉴스에 나가냐. 당장 끄라”며 호통을 내질렀다.

기자들도 직접적인 취재는 자제했다. 가족들이 인터뷰 자체를 거부해 대부분 현장 분위기만 살피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사진기도 거의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았다. 외곽에 있는 가족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기도 했지만 쉽진 않았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말 거는 자체가 부담스럽다. 최대한 자극하는 취재는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보도채널 한 카메라 기자도 “가족들이 싫어하는데 아무래도 취재나 촬영하는 게 도리는 아니다. 찍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 세월호가 침몰한 지 7일째인 22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체육관에서 기자들은 주로 2층에 머물렀다. 체육관에 있던 한 일간지 기자는 “처음에는 1층에도 기자들이 많았지만 모두 내쫓겼다. 어떤 기자는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멱살을 잡혔다”며 “가족들이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데스크도 ‘조심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자”고 외쳤던 19일 밤, 체육관에선 카메라와 노트북 등이 부서지는 소동도 있었다.

사고 초기 취재에 응하는 가족들이 더러 있었지만 ‘전원구조’ 오보를 비롯해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잇따르자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다 거짓말”이라는 가족들 절규에 기자들도 가슴이 쓰렸다. 그 심정도 이해가 됐다.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언론이 가족들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게 크다. 정부가 적극 수색하도록 채근해야 하는데 발표 그대로 보도한다고 보는 것 같다”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보도윤리가 아쉽다”고 말했다. 보도채널 한 기자도 “정부 각 부처도 정보를 내면서 소통이 안 된다. 진입했다고 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금방 말이 바뀐다”며 “언론도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고 닷새째인 20일, 연달아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팽목항 뒤편 선착장에 시신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 물결치는 파도가 야속했다. 신원확인소로 시신이 옮겨지고 ‘회색 티셔츠…검정 바지…’ 인상착의가 전해지면 실종자 가족들이 쉼없이 몰려들었다. “살려고 발버둥 쳤는데…내 새끼 살려내, 살려내….” 천막 너머로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들리자 뒤편에 서성이던 기자들도 숙연해졌다. 신원확인소를 취재하던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슬퍼하는 유족들에게 취재하지는 않는다. 질문은 삼가고 있다”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취재경쟁도 있었다. 처음 시신이 운반될 때 카메라와 사진 기자들이 몰리면서 가족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그제야 폴리스 라인이 생겨났다. 18일 밤엔 사진기자들이 신원확인소 바깥 코너에서 빛이 새어나온 틈으로 사진을 찍자 경찰이 막아섰다. 한 지역신문 사진기자는 “판단을 잘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욕심을 비우면 과잉 취재는 안 해도 된다”며 “기자들이 유념해야 할 준칙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분1초 타들어가는 가족들 속에 기자들도 새벽부터 밤까지 현장을 주시하고 있다. 쪽잠을 자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24시간 중계차는 돌아가고, 며칠씩 해상에 나가 생중계를 하고 있다. 3일간 해상중계에 투입된 한 방송사 기자는 “상황이 다급하고 가족들이 중계로 진행상황을 알기 때문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사고 해상에 다녀온 기자들은 가족들이 실제 상황을 물어올 때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하는 기자들로선 냉철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기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 무엇도 여기 있는 분들의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비할 수는 없다.”

진도=강진아·김희영·강아영 기자 saintse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