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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언론보도 2차 피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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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성폭행사건도 언론에 배상판결“대한민국의 평범한 소시민이자 사회적 약자였던 피해자 가족은 언론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언론인권센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언론보도 2차 피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 토론회에서 김종호 변호사는 아동범죄 사건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을 이같이 비판했다.
2년 전 나주에서 일어난 아동성폭행 사건에 대해 무차별적 보도를 이어갔던 일부 언론사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최근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 언론에 의한 2차 피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일보 한 기자는 숨진 피해아동의 언니인 A양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화장실 앞 복도에서 몇몇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터뷰를 시도했다. 중앙일보는 A양과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 녹취록을 입수해 9일 단독 보도했다. 채널A와 MBN 등은 A양이 지내던 아동보호센터를 화면에 담았고, 한겨레 등은 A양이 머무는 곳을 적시했다가 기사 수정을 요청받았다. A양은 기자들을 피해 거처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는 연일 자극적 기사가 쏟아졌다. A양이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를 근거로 ‘계모가 피해아동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아파트 계단에서 자주 밀었다’, ‘죽어가는 피해아동의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등의 내용이 기사 제목으로 노출됐다.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취재 중인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현장이 급하게 돌아가다보니 (기자들이) 단독 팩트를 찾거나 새로운 것을 발굴하는 것에 함몰돼 있다”며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만나고, 워낙 가까이 붙어서 (취재를) 하니까 사람들이 기자에 ‘학을 뗐다’더라”고 전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9일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숨진 어린이의 언니, 친어머니, 고모 등을 너무 심하게 취재했다. 이는 아동복지법상 금지 행위로 형사 고소를 검토할 수도 있다”며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악의적인 추측성 기사는 자제해 달라”고 강조했다. 숨진 아동의 친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분들(언론)의 목적은 좋지만 방법이 잘못됐다”며 “학대에 시달려온 아이인데 이런 것(과잉 취재)들도 또 다른 학대가 아닌가.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만한 기사가 있으면 내려달라고,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는 지난 2012년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으로 알려진 ‘고종석 사건’의 언론보도 양상과 판박이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는 피해자 가족에게 채널A 2300만원, SBS 3000만원, 경향신문 2500만원 등 총 7800만원을 배상하고 기사 일부를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조선일보와 연합뉴스는 오는 30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들 언론은 피해아동의 상처부위를 그대로 보도하고, 집안 사진과 피해아동의 일기장을 공개했다. 집 주변은 위성사진, 그래픽 등으로 공개돼 결국 피해가족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부모를 알코올·게임 중독자로 묘사하며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음을 암시한 보도도 이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그해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동으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제정했다. 권고 기준은 △피해자와 주변인물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사생활 보도를 지양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2011년 제정된 ‘인권보도준칙’에도 아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을 두고 있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석했던 박수진 헤럴드경제 기자는 “수많은 언론매체와 경쟁하며 클릭 수를 높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 (보도준칙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이라며 “하루 단위로 돌아가는 일간지에서 수습 때 받은 교육을 모두 기억해 취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혜선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취재 관행이라는 물리적인 부분 때문에 본질적인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취재 윤리가 관행에 앞서 강도 높게 적용돼야 한다. 자극적 소재가 아닌 사안의 본질에 접근한다면 이러한 관행을 언론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