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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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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취재한 베트남전, 그때 생각하면 얼굴 붉어져
기자는 비판적 눈이 생명…사실 뒤 진실에 관심 둬야기자 생활 56년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얼굴이 붉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돌리고 싶다. 1958년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저 모양은 아닐텐데, 하는 반성도 한다. 역사학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다른 상황을 가정하여 “그때 그렇지 않고 이랬더라면 어땠을까”하고 묻는 것을 Anti-factual한 접근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한다면 무엇을 달리 할 것인가. 지금의 나라면 일말의 주저도 없이 취재·보도·논평의 대상이 되는 사태를 훨씬 비판적으로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197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 스쿨에서 들은 첫 강의가 떠오른다. 이 대학은 전통적으로 외부인사를 초청하여 저널리즘 스쿨 학생 모두를 상대로 공개강의를 하는 것으로 새 학기를 시작한다. 그날의 초청강사는 그때 이미 전설이 된 CBS 방송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였다. 강의 제목은 ‘Advocacy journalism.’ 특정 노선, 주장, 사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주관적인 보도 자세를 의미한다. 그때 미국 언론계와 언론학계는 주관보도 vs 객관보도의 뜨거운 논쟁을 치르고 있었다.
계몽주의 정신을 계승한 그들의 문화에서 객관보도는 금과옥조였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어서 기자 개인과 개별 언론사는 모든 현상을, 그것이 아무리 복잡해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지성을 가졌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Fact가 보도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그렇게 진감시킬 수 있었던 것도 신문과 방송들이 매카시 상원의원이 발표하는 Fact를 생각없이 충실히 보도하는데 그쳤기 때문이었다. 사실 뒤의 Truth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론이 객관보도를 본격적으로 재고하기 시작한 계기는 베트남 전쟁이다. 사이공의 미군 사령부 기자실에서 공보장교의 브리핑을 믿고 전황을 보도하여 본국의 미국인들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이 성공적으로 베트남의 공산화, 더 나가서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종군기자로 사이공에 온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핼보스탬 기자는 실제 전황과 미군 사령부의 발표 사이의 심각한 갭에 주목했다. 그는 다원취재를 통해서 다른 특파원들과는 차별화된 보도를 했다. 뉴욕타임스의 논조가 달라졌다. 전쟁에 비판적이던 미국내 리버럴들이 핼버스탬의 보도에 고무되어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반전 무드의 시작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에 전화를 걸어 핼버스탬의 보도를 오보 투성이요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핼버스탬에게 홍콩 휴가라는 특별 포상으로 존슨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 기자에 그 신문,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렇게 해서 객관보도 vs 주관보도 논쟁에서 균형이 주관보도를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 스쿨에서 월터 크롱카이트가 ‘Advocacy journalism’을 주제로 한 강의는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크롱카이트는 주관보도를 상당 부분 긍정하는 전제 위에서 그래도 객관보도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널리즘에서 객관보도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나에게는 실감하는 강의였다. 나는 1965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순회특파원으로 나가서 사이공에 베이스를 두고 전선을 전쟁을 취재하고 그 나라의 티우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인도 같은 나라에 ‘출격 취재’를 한 경험을 가지고 컬럼비아대학에 갔던 것이다. 객관보도 vs 주관보도의 논쟁이 여전히 치열할 미국의 언론 풍토에서 8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으로 취재를 할 때 자주 크롱카이트의 말을 상기하고 객관보도의 챔피언인 제임즈 레스턴을 두 번 인터뷰 하면서 나름대로 이 문제를 천착했다.
그러나 지금 회고하면 이런 양심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베트남 전쟁을 생각없이 취재·보도했다. 핼버스탬 수준은 아니라도 그래도 미국의 베트남 참전, 한국의 베트남 파병의 정당성(도덕성까지는 아니라도)을 조금이라도 회의했더라면 그때의 나를 거울에 비춰보는 내가 얼굴을 덜 붉히지 않을까.
뒤늦은 자각이지만 기자에게는 비판적 눈이 생명이다. 비판적인 눈은 Fact 뒤의 Truth를 간파하는 눈이다. 그건 사설과 칼럼을 쓰는 경우뿐 아니라 취재와 보도에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극언하자면 비판이 빠진 보도는 Cynicis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