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앞줄 왼쪽부터 조승호,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현덕수 해직기자. 해직 2000일이 됐지만 YTN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웃을 수 있었다. | ||
“2000일…시작은 몰랐지만 끝은 우리가 만든다.”
3월 28일,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하던 YTN 기자들 중 6명이 해직된 지 2000일이 되는 날이다. 오후 6시30분, 서울 남대문 YTN타워 1층 로비에는 그들과 함께 한 YTN 동료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5년 5개월, 해직 2000일을 맞아 YTN노조가 주최하는 ‘버티GO’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마침 이날은 29일 상암 신사옥으로 이사를 앞둔 YTN 노조의 남대문에서의 마지막 집회였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해직자여 돌아오라.”
“가라, 가라, 어서가라, 배석규여 집에가라.”
1층 로비에는 YTN 기자들의 우렁찬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해직기자 복직과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기자들의 염원이 하나로 모아졌다. 2008년 10월 6일, 계속되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정부의 압박은 거세졌고 결국 6명의 기자들에게 보내진 것은 해고통지였다. 2000일 후, YTN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시작이었지만 ‘복직’이라는 끝은 꼭 이루겠다는 것이 YTN 구성원들의 외침이다.
4월 7일 YTN은 상암동으로 이전한다. 새로운 YTN 신분증이 나온 날, 동료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한 동료는 해직기자 6명의 얼굴을 넣어 신분증 하나를 만들었다. 상암동에서 복직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꿨던 동료들의 마음을 담았다. 권영희 YTN 노조위원장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00일이 결국 왔다”며 “남대문 사옥으로 옮겨온 지 만10년이 됐다. 해직자들이 더 빨리 돌아와야 했지만 남대문은 이들이 돌아올 터가 아닌 것이다. 상암이야말로 해직자들이 빨리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진수 기자는 “해직기자들과 상암동을 꼭 같이 가고 싶다. 남대문에서 끝냈어야 했는데…”라고 말을 잇다 눈물을 흘렸다.
![]() |
||
| ▲ 4월7일 상암 신사옥으로 이전하는 YTN. 신사옥 출입증이 나온 날, 한 동료가 해직기자 6명의 사진을 합성해 만들었다. | ||
힘들고 지난한 싸움 속에 2000일을 버텨온 해직기자들. 현덕수 기자는 “처음 사옥 앞에 천막을 치고 반대 투쟁을 시작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며 “언론인으로서 양심을 지키려했던 것이 어느새 5년 반이 지났다. 지나고 나니 숫자는 역사가 됐다. 언론사와 한국사에 상징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YTN 상암동 이전을 앞두고 그는 남대문 사옥에 입성했던 2004년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당시 새벽 5시에 생방송되는 첫 뉴스인 ‘굿모닝코리아’ 간판앵커로 가슴 벅차고 떨리는 멘트를 했었다”며 “상암에서도 누군가 떨리는 첫 멘트를 할 것이다. 모두가 그 자리에 해직 기자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기에 아쉽다”고 말했다.
현 기자는 “소위 경력 없는 생활을 하며 때로는 조급해지기도, 답답하기도 했다”며 “그때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발견한 문구에 치유됐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이 언론인으로 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에 2000일을 견뎌왔고 앞으로도 견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호 기자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 없다"며 "2000일이 오는 동안 우리가 과연 옳았나, 과연 이겼나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우리가 옳았기에 YTN 동지들이 큰 소리 칠 수 있었고, 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국민들이 응원해주는 것은 이기기 때문이 아니다.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방송이라는 옳은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2000일의 주인공은 6명이 아닌 지금도 싸우고 있는 YTN 동료들이다. 용기를 갖기를 감히 말씀드린다. 힘내 달라”라고 말했다.
![]() |
||
| ▲ (왼쪽부터) 우장균 기자와 조승호 기자. 조 기자는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며 “2000일의 주인공은 6명이 아닌 지금도 싸우고 있는 YTN 동료들"이라고 말했다. | ||
정유신 기자는 “상암동 새 건물을 봤는데 골뱅이 계단이 인상 깊었다. 수송동 시절, 계단을 바삐 뛰어오르며 부딪치고 테이프를 떨어뜨렸던 기억이 났다”며 “그래도 남대문 사옥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군에 가 있는 동안 집이 이사 가는 듯한 기분이다. 남자는 치매에 걸리면 자기가 가장 열심히 일한 곳을 찾는다던데 저는 서울역 근처를 배회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했다.
2000일까지 늘 함께 해준 동료들은 늘 큰 힘이었다. 우장균 기자는 “집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유심히 보니 꽃이 피어 있더라. 어느새 봄을 몇 번째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6명의 해직기자가 2000일을 버티도록 해준 것은 조합원 동지들의 덕택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권석재 기자도 “후배들은 미안함이 앞선다고 하지만 외려 저희가 미안하고 항상 고맙다”며 “우리는 다만 옆집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언젠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노종면 기자는 4월1일 국민TV 개국을 앞두고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했다.
![]() |
||
| ▲ (왼쪽부터) 권석재 기자와 정유신 기자. 권 기자는 "우리는 언젠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
2009년 11월 1심 재판부는 6명 전원에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1년 4월 2심에서는 우장균ㆍ권석재ㆍ정유신 기자에 해고 무효를, 노종면ㆍ조승호ㆍ현덕수 기자에 해고가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그로부터 3년, 대법원은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날 YTN노조는 대법원에 나가있는 권준기 기자와 영상통화를 연결해 현 상황을 재치 있게 비판했다. 3년째 대법원이 판결을 미루고 있는 이유를 묻자 권 기자는 “대법원이 아주 조용하다. 눈치를 보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고, 그에게 “대법원장을 만나 꼭 물어보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권 기자는 “지난 1월 MBC 1심 판결을 보고 모두 뭉클했을 것이다.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 정당하고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났다. 우리사회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가 공정방송을 위해 옳은 판결을 계속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
||
| ▲ 대법원에 있는 권준기 기자와 실시간 영상 연결. 대법원은 3년째 YTN 해직기자 판결을 미루고 있다. | ||
언론계의 지지 방문도 잇따랐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YTN 해직 사태를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나고, 안타깝다”며 “YTN 겨울왕국이 빨리 끝나고 새 봄이 왔으면 좋겠다. '버티고, 이기고, 견뎌서' 반드시 복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무엇보다 YTN 해직자 6명을 포함해 언론계에는 16명의 해직 언론인이 남아있다”며 “복직이 되지 않고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기협도 올해 복직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은 “정권에 충성심 높은 사람이 YTN 사장으로 있는 현실에서 비겁하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이라며 “2000일 동안 지치지 않고 투쟁해온 해직기자 6명을 존경한다. 그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지고 있는 YTN 동지들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동지들이 있는 한 YTN과 공정보도의 자랑스러운 표상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전 위원장도 “올해가 해직된 동아투위 선배들이 자유실천선언을 한 지 정확히 40년이다”며 “현재 바른 언론인과 언론을 키우고, 해직 언론인의 복직을 지원하는 등 자유언론을 되살리는 재단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 전 위원장은 “하루속히 출범해 YTN 해직기자들과 함께 더 힘내서 살아갈 것”이라며 “그전에 박근혜 정부와 배석규 사장에 해직자 복직과 YTN 정상화를 할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 |
||
| ▲ '해직자 복직 투쟁에는 선후배가 따로 없다.' 복직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는 YTN구성원들과 언론계 인사들. | ||
KBS에서는 해직 언론인을 위한 후원금을 전달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해직 언론인 복직을 위해 올 초 기금을 만들어 3월부터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현재 28일 기준 335명 388만원이 모아졌다.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여의도에 어느새 벚꽃이 활짝 피었다. 현장에 있는 우리들이 공정방송을 위해 더 열심히 싸운다면 복직도 예고 없이 갑자기 오지 않을까 싶다”며 “6년전 공정방송을 위해 싸울 때 KBS와 MBC도 싸웠다. 하지만 KBS만 해직자가 없는 ‘마음의 빚’이 있다.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했고 복직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와 언론연대도 이날 YTN노조에 격려금을 전달했다. 또 YTN노조는 '노란봉투의 기적'이라 불리며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손잡고' 측에 기금을 전했다.
2000일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YTN 동료들의 모습도 상영됐다. ‘2천일 동안 우리는 눈물 흘렸고, 분노했고, 외쳤다…그러나 돌이켜보면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다.’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이 새겨지며 이들은 함께 걸어온 길을 기억했고, 뜨거운 환호가 이어졌다. “상암 시대에는 6명이 꼭 다시 오게 하자. 너와 내가 힘을 합쳐 YTN을 살려보자.”
![]() |
||
| ▲ 28일 해직2000일을 맞아 남대문 YTN사옥에 모인 YTN노조원들. '복직'과 '공정방송'을 위한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