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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은 내 인생의 전부…복직해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

해직기자 조승호 동행 인터뷰

강진아 기자  2014.03.26 12: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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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 서울 남대문 YTN타워 15층 노조사무실 앞에서 조승호 기자. 해직기자들의 즉각적인 ‘복직’을 촉구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곧 복직할 줄 알았는데 벌써 5년
사측 두둔하는 선배들 보면 슬퍼
2심 해고 판결에 분신까지 생각
효소 만들고 마라톤하며 상심 달래
정당한 평가받고 복직하고 싶어


28일이면 YTN 기자 6명이 해고된 지 2000일이다. 해직 당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아들이 중학교 3학년으로 컸다. 그 세월 동안 지치고 힘들고 그래서 타협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 보도전문 채널의 사장에 대통령의 선거운동 참모를 임명한 의미는 누가 봐도 명백했다. 권력의 비민주적 행태에 저항하는 것은 기자로서 당연한 의무였고 그 과정에서 마이크를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YTN 사태는 언론인 투쟁의 상징이다. 기자협회보는 조승호 해직기자를 하루 동안 밀착해 해고 이후 그의 일상과 현재의 심경, 복직에 대한 염원을 들어봤다.

#2008년 10월6일. 전화 한 통이 울렸다. 유신이었다. 침울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징계 나왔어요. 형도 해고예요….” 징계는 받겠지만 설마 해직까지야 생각지 못했다. 과거 유신시절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은 수감자가 “영광입니다” 소리 질렀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받고나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실감이 안 났던 거다. 그래도 후배인 유신이가 있는데 놀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담담하게 반응했다. 당시 기자들도 6명까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땐 다들 해고라도 ‘6개월 정직과 별 차이가 없다’고들 했다. ‘공정 방송’이라는 정당한 요구를 했기에 모두들 곧 복귀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5년5개월. 이렇게 장기화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난 2008년 이후 ‘권석재ㆍ노종면ㆍ우장균ㆍ정유신ㆍ조승호ㆍ현덕수’는 늘 YTN 동료들에게 가슴 아린 이름이었다. 6년여 동안 사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해직기자들은 이를 악물고 각자의 방식으로 2000일을 버텨왔다. 해직 당시 국회팀장이자 공정방송점검단장을 맡았던 조승호 기자는 “과연 해직 사태가 2000일을 끌어야 할 일인지” 반문했다. “언론의 공정성을 찾고자 한 것이 과연 기자로서의 자격을 잃을 일인가. 사회에서 ‘생존권’까지 박탈당할 만큼 죄일까. 언론인으로서 정의 실현을 위한 역할을 ‘배운 대로’ 한 것뿐이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2000일은커녕 단 하루라도 해직으로 있을 이유도, 의미도 없다.”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가 YTN 사장에 임명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그로부터 불과 5년 전 당시 한나라당은 “대통령선거 캠프 특보 출신을 사장에 앉히는 것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한 방송사에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당시 KBS 사장에 특보였던 서동구씨를 임명하면서다. 조 기자도 당시 한나라당 주장에 공감했고, 며칠 뒤 임명은 철회됐다. 구본홍 사장이 낙점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해 지극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5년 전과 정반대였다. 정치권력은 이해관계에 따라 180도 태도를 뒤집었고 대거 해직 사태가 빚어졌다.

다수의 간부들은 침묵했고,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언론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후배들에게 등을 돌리고 오히려 권력에 동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충성을 다하는 모양새다. 조 기자는 권력에 대한 분노보다 함께 일했던 이들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거듭된 보도 누락ㆍ삭제 사태만 봐도 현 보도국장이 국정원 직원인지, 청와대 하수인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했다. ‘데스크권’ 운운하며 노사 공방위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개국 당시 KBS에서 다수 온 이들은 초창기 후배들에게 방송의 ABC를 가르쳐준 이들이다. “기자정신을 갖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신대로 하라던 선배들이 보직 하나를 지키려고 사측을 두둔하며 권력의 하수인이 됐다. 기자로서의 자존심도 잃고 인간으로서 염치도 저버렸다. 한때 믿고 존경했던 저들이 지금은 YTN 보도를 다 망치는 공범들이다.”



   
 
  ▲ 조승호 기자가 YTN노조사무실에서 만난 현덕수 해직기자(왼쪽)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해직 후에는 점점 뉴스를 멀리하게 됐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났다. 예전엔 늘 집에서 YTN을 틀어놨지만 이젠 성역 없던 그때의 YTN을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대 중반 조 기자가 새벽뉴스1팀장을 맡았던 당시만 해도 팀장에 전권을 주며 기자들 사기가 충만했다. 돌발영상도 당시 높은 인기였다. “YTN전성기 땐 최소한 정치적 계산을 해서 내보내는 경우는 없었다. 기자들 항의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이런 뉴스를 보면 정말 YTN에 돌아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차라리 복직을 안 해도 될 정도로 공정보도를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조 기자는 “6명을 해고해도 보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어려운 현실에서 기자들이 열심히 싸우는 것을 알지만 결과물인 ‘방송’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1년 4월15일. YTN 해고무효소송 2심 판결은 해직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당시 서울고법은 조승호ㆍ노종면ㆍ현덕수 해고 정당, 우장균ㆍ권석재ㆍ정유신 해고 부당의 3:3 판결을 내렸다. 2009년 11월 6명 전원 ‘해고무효’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다) 사법부가 약자의 편에서 정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데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이 너무나 컸다. 전원 복직이 아닌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조 기자는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옳은 일’을 했다는 신념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데 분노가 컸다. 판결 후 대법원 앞에서 ‘분신’이라도 할까 생각할 정도였다.” 판결의 요지는 더 황당했다. ‘낙하산 사장’이라는 불공정한 요인에 물리력이 아닌 ‘주의’와 ‘촉구’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 놓고 ‘먹지 말라’고 주의만 하라는 것인데, 그런다고 고양이가 생선을 안 먹겠는가. 말도 안 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사법부를 상식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지만 이미 겪은 실망감에 현실에서의 기대는 접은 상태다. 지금껏 판결이 나지 않는 것도 기자들의 ‘생계’는 나몰라라한 채 정권 눈치보기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라는 해석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난 1월 1심에서 ‘해고 무효’가 선고된 MBC 소송은 2ㆍ3심에서 꼭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조승호 기자와 아내 탁영희씨, 막내딸 한희양이 21일 아침 다정하게 학교에 가고 있다.  
 
해직이 장기화되면서 어김없이 ‘공허함’과 ‘무력감’이 찾아왔다. 현직에 있을 당시 ‘하숙생’ 생활을 하던 그에게 “아빠는 몇 밤 자고 올거냐”며 초등학생이던 큰아들이 묻던 일도 어느새 추억이 됐다. 중3인 큰아들과 중1인 큰딸에겐 기자 아빠의 모습은 그래도 남아 있다. 하지만 “아빠는 왜 회사를 안 나가?”라는 어린 막내딸에겐 아직 ‘해직’을 설명해 줄 자신이 없다. 학교 가정조사표에 아빠 직업이 ‘기자’가 아닌 빈 칸이 될 때 문득 해직을 실감한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뽀뽀세례로 막내딸을 깨우고, 팔을 다친 아들의 머리를 감겨준다. 오전 8시10분, 온 가족이 함께 집을 나서며 막내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은 조 기자의 중요 일과다. 학교 가는 길 신호등 앞에서 “바뀌어라 얍” 손짓하고,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손 흔드는 조 기자는 영락없는 ‘딸 바보’다.

대신 새로운 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족들 건강을 위해 2012년부터 만든 ‘효소’가 이미 수십 통이다. 수세미ㆍ천년초 등 갖가지 재료로 만든 효소를 휙휙 젓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지난해엔 주말농장에서 다양한 작물 농사도 지었다. 2006년 시작한 ‘마라톤’도 탈출구다. 5km부터 100km를 넘어선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일주일에 70~80km씩을 뛴다. YTN마라톤동호회인 ‘와달사(YTN달리는사람들)’ 대표도 “소속감이 필요하다”는 후배들의 성화에 지난해까지 맡아왔다. 다른 해직기자들은 뉴스타파, 국민TV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위기도 있었다.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내가 2010년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며 의사는 “굉장히 위험하다. 못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해직 당시 “당신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다. 풍족하진 않아도 내 월급이면 굶어죽진 않을 테니 걱정 말라”던 아내였다.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해직 때문에 그렇게 된 것만 같아 한없이 미안했다. 해직 이후 내색하진 않아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다행히 쾌차해 교사생활을 계속하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른 3명의 해직기자들도 끝내 복직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부친을 잃어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조 기자의 장모인 안수금(75)씨도 해직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죠.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입을 떼자마자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막내가 다가와 “할머니, 왜 울어?”라고 묻는다. 해직기간이 오래다보니 혹여 한마디 말에 사위 마음이 다칠까 더 조심한다. “빨리 직장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면 가슴이 참 아파요. 가장으로서 숨겨둔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 2012년부터 가족들 건강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효소’. 수세미ㆍ천년초 등 갖가지 재료로 만든 효소들이 수십 통이다.  
 
YTN 동료들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동료들은 복직이 안 되는 데 가슴 아파하고, 해직기자들은 점점 짐이 되는 것만 같아 서로 미안해한다. 조 기자 아내 탁영희씨는 “YTN 동료들은 대단하다. 해직기자 문제를 늘 숙제처럼 생각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 참 고맙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는 ‘바보’같은 사람들을 위해 퇴임 후 제주도에 집을 마련해 YTN노조원들을 위한 방 한 칸은 꼭 비워두고 싶단다.

4월7일 YTN은 ‘제2창사’를 꿈꾸며 상암동으로 이전한다. YTN기자들은 새롭게 출발하는 상암 신사옥이 ‘복직’의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복직이 되면 해직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조합원 게시판에도 “해직자들은 신사옥 출입증을 못 받는다”고 씁쓸해하는 글이 올라왔다. 가족들도, 동료들도 수송동 개국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 상암에서는 함께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태 해결에 “칼자루를 쥔 사람이 풀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조 기자. 기득권을 내려놓고 복직이라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인이 제거돼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원인을 제공한 정치권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해야 한다.” 복직 문제가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복직을 위해 우리의 소중한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명예’ 복직이다. 장기수가 전향 각서를 쓰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고 회유하는 것과 같다. 남은 기자생활이 더 편해질 순 있어도 해직기간인 5년5개월은 물론 22년 기자생활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다. ‘복직’도 중요하지만 당당히 정당한 평가를 받으며 복직하고 싶다.”

그의 전화는 여전히 ‘011’이다. 후배들은 스마트폰으로 바꿔달라 아우성치지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13’으로 시작하는 뒷 번호가 개국 초기 사건팀 경찰기자에 지급됐던 번호다. 개국 시절부터 함께해온 역사가 있는 만큼 “복직하면 바꾸겠다”고 후배들에게 약속했다. 복직이 되면 하고 싶은 일도 있다. 밀린 임금으로 마라톤대회에 100명 단체 신청해 동료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다.

“어디서도 인생 1순위는 YTN복직이다. 동료들과 같이 있진 못해도 마음은 함께다. 공정방송을 위해서라도 모두가 더 건강해져야 함께 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