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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조작 눈감고 간첩 혐의만 관심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보도 분석

김고은 기자  2014.03.05 12: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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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신문·공영방송 철저히 외면
뉴스타파 등 몇몇 언론 활약 돋보여
SBS 법조팀 기자들 칼럼 SNS 화제

화교 출신 탈북자 유모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핵심 증거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의혹 사건. 여차하면 검찰총장이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를 대형 사건이 불거졌는데, 언론 보도는 극단적인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다. 보수지로 분류되는 메이저 신문과 공영방송은 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본질을 호도하는데 급급하고 경향신문과 한겨레, ‘뉴스타파’ 같은 소수의 비주류 언론만이 진실 찾기에 힘을 쏟는 형국이다.

우선 보도 양부터 현저히 달랐다. 검찰의 증거 조작 의혹이 처음 폭로된 지난 14일 이후 사흘간, 동아·조선·중앙일보는 각 4건의 기사와 관련 사설·칼럼을 실어 17건을 보도한 경향이나 13건을 보도한 한겨레와 큰 차이를 나타냈다. 특히 조선일보는 15일 관련 보도를 내놓지 않다가 검찰의 공식 해명 기자회견 이후인 17일이 돼서야 10면에 기사를 실었다. 세 신문 모두 사설을 통해 위조 의혹의 당사자인 검찰에게 사건 진상 조사를 촉구한 점도 경향·한겨레의 ‘특검’ 도입 요구와 차이를 보인 지점이다.

지상파 뉴스에서도 증거 조작 사건은 동계올림픽에 밀려 ‘홀대’를 받았다. KBS ‘뉴스9’는 지난달 14일부터 2주간 총 8건의 보도를 내보냈으나 그 중 3건이 단신이었다. 기자 리포트도 후반부에 배치하거나 국정원과 검찰의 해명을 부각시키며 의제 죽이기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조작 의혹이 제기된 후 이틀간 침묵을 지키다가 16일에야 보도를 내보냈다. 그나마도 증거 조작 사건이 검찰과 민변의 진실 공방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증거 조작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국익에 반한다는 엉뚱한 주장도 나왔다. 지난해 1월 유씨의 간첩 활동 의혹을 최초로 보도했던 동아일보는 지난달 20일 ‘‘간첩 증거조작 의혹’ 정략적 공방…‘휴민트’ 금가는 소리는 안들리나’란 제목의 기자칼럼에서 공안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문건을 놓고 공개 공방을 벌이면서 그동안 닦아 놓은 인적 정보망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정보전이라는 국익의 입장에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굳이 서울고법이 받아야 할 중국 측의 회신을 (민변이) 입수해 법정이 아닌 장외로 끌고나가 정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람직했을까”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관심의 초점을 검찰과 국정원에서 다시 유씨의 간첩 혐의로 돌렸다. 조선은 지난 3일 ‘국적은 중국…왜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 왔나’란 제하의 기사에서 “민변이 검찰·국정원이 유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서류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중국 정부가 이런 민변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의 출발점이었던 유씨 간첩 혐의 여부는 증발하고 위조 논란이 관심의 초점이 돼버렸다”며 이미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유씨의 행적을 새삼스레 조명했다.

주류 언론이 검찰과 국정원 ‘감싸기’나 ‘물타기’로 본질을 호도하는 사이에도 경향·한겨레와 CBS 등 소수 언론들의 진실 추적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해직언론인 등을 주축으로 한 인터넷 독립 언론 ‘뉴스타파’의 활약이 돋보인다. 뉴스타파는 기존 언론들이 이 사건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던 지난해 초부터 집중적으로 국정원의 강압 수사와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수차례 특종의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검찰이 유씨의 북한-중국 출입경(출입국) 기록을 제출한 지난해 12월6일 위조공문서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것도 뉴스타파였다.

기존 뉴스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자들의 ‘장외’ 활동도 인터넷과 SNS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SBS 법조팀의 김요한 기자는 지난달 26일과 지난 3일 두 차례 SBS 홈페이지에 올린 ‘취재파일’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을만한”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사건을 상세하게 분석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김 기자는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국정원과 검찰은 물론,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애써 꺼리는 듯한 정치권과 언론의 태도도 매섭게 비판했다.

같은 법조팀의 권지윤 기자도 앞서 지난달 25일 취재파일에서 “국정원이 의혹의 핵심이 되면서 보수진영은 이번 문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건의 진상 규명이 휴민트를 붕괴시키고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념의 허구성에 근거해 본질을 왜곡시키는 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