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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설주 임신설 등 민감한 질문도 받아줘

[이산가족 상봉 취재기] 한겨레 정치부 통일외교팀 최현준 기자

한겨레 최현준 기자  2014.02.26 14: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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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정치부 최현준 기자  
 
인터넷 불통에 취재 내용 팩스로 보내고
영상 테이프 하루 4차례 남쪽으로 배달
남북 기자들 ‘김정은 비방·중상’ 논쟁도


“최 선생은 기자 맞습니까?”
“왜요? 지금 취재하고 있잖아요?”
“근데, 왜 아까 우리쪽 가족들한테 질문을 하십니까?”

이산가족 상봉 취재 이틀째인 21일 오후 금강산호텔 연회장, 한층 편안해진 분위기를 틈타 북쪽 가족에게 질문을 던졌다. 민감한 것도 아니고 ‘기분이 어떠냐’는 정도의 질문이었지만, 북쪽 보장성원(지원인력)이 곧장 다가와 팔을 잡아 끌었다. 아마도 기자가 아닌 국정원 직원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버틸까 하다 분위기가 험해질 것 같아 돌아섰다. 방북 사전교육 때 ‘북쪽 가족에게 질문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지만 이렇게 심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 금강산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행사 중 1차 취재단(2월20~22일)에 속해 금강산에 다녀왔다. 지난해 샅바싸움만 거듭하던 남북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본격적인 관계개선에 나선 참이었다.

취재 영역은 제한됐지만 분위기는 예전보다 한층 부드러웠다고 한다. 여러 차례 상봉행사를 치른 통일부 당국자들의 평이다. 특히 남한 기자들의 민감한 질문에 북쪽 관계자들은 비교적 관대하게 반응했다. 예컨대 한 남쪽 기자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구두를 신은 채 아이들이 기어다니는 보육원 방에 들어간 것이 적절했냐’는 요지의 질문을 하자 북쪽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설명하려고 했다.

김 제1비서의 부인인 리설주씨의 임신설과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에 대한 질문에도 북쪽 관계자들은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를 문제삼지는 않았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문제를 삼을 수도 있는 질문들이었다. 북쪽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상당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남북이산가족 상봉 2일차인 21일 오후 북한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접대원들이 남측 이산가족들에게 북한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뉴시스)  
 
취재환경은 상당히 열악했다.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고, 몇 가닥의 직통전화선과 국제전화선이 남쪽과 연결된 통신의 전부였다. 기자들은 취재 내용을 팩스로 보내야 했다. 사진 전송은 국제전화 선으로 이뤄졌는데 수백만원의 요금이 나온다. 용량이 큰 영상 테이프는 지원인력이 직접 하루 4차례씩 남북을 오가며 배달했다.

남북 기자 사이에 이른바 북한의 ‘최고존엄’인 김정은 제1비서에 대한 비방·중상과 관련한 논쟁도 있었다. 북쪽은 지난달 내놓은 ‘중대제안’의 첫 과제로 ‘상호 비방·중상의 중지’를 요구한 바 있다. 이번에 만난 북쪽 관계자들도 틈만 나면 “남한 언론이 우리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북남관계가 잘 된다”고 했다. 한 북쪽 보장성원은 “남측 언론은 남북관계에서 꼭 ‘하로동선’ 같다. 여름철 화로와 겨울철 부채처럼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쪽 기자들은 “남한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다. 정부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런 논쟁의 바탕에는 각자의 다른 언론관이 깔려 있다. 북쪽 관계자는 “당과 언론은 모두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이 둘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남쪽은 “우리는 모든 부분을 취재하고 성역없이 비판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했다. 양쪽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북쪽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글은 남쪽의 논리를 군색하게 했다. 이 매체는 “남조선에서 언론의 자유는 명색뿐이다. 남조선당국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대통령직속기구를 통해 당국에 비판적인 언론사와 언론인들에 대해 경고, 벌금, 해직 등의 징계를 가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북쪽의 ‘당-언론 일체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남쪽 언론이 언론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지 않다는 북한의 주장은 부인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