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경찰 증원의 대책 없는 실행을 비판한 YTN 뉴스가 보도국장의 지시로 박 대통령이 언급된 부분이 삭제되면서 내부 기자들 사이에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사건팀 기자들은 물론 YTN 노조와 일선 기자 등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반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침묵을 지키던 이홍렬 YTN 보도국장은 14일 “리포트 제작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가 된 기사는 지난 10일 방송된 ‘무대책 경찰 증원…불만 속출’ 기사다. 본래 ‘대통령 공약에 경찰 무대책 증원’이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공약에 급급해 교육시설 등 뚜렷한 대책 없이 많은 인원을 뽑은 경찰 행정 문제를 꼬집었다. 하지만 최종 방송은 기사 마지막에 대통령 공약이라는 부분을 제외하고 제목과 앵커 멘트, 지난 2012년 10월 박 대통령 발언 녹취 영상 등 대통령을 언급한 부분이 모두 자취를 감췄다. 당초 기사는 지난달 19일 제작을 마치고 20일 방송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 보도국장이 “기사 가치가 없다”며 추가 취재 지시 등 수차례 재수정을 요구해 이달 10일에야 방송이 됐다.
기사를 작성한 사회1부 사건팀의 기자 9명은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사건팀은 이례적으로 3번의 데스킹과 3번의 재제작을 거치며 대통령 녹취와 화면을 삭제하는 등 가급적 다른 의견을 수용하려 노력했다”며 “하지만 원본과 최종 방송본을 비교해보면 대통령 언급 부분만 삭제됐고 결국 인력 증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로 기사가 나갔다”고 밝혔다.
사건팀은 “이번 보도과정을 통해 YTN 고위층의 자기 검열과 권력 눈치 보기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박 대통령의 ‘박’ 자도 대통령의 ‘대’ 자도 쓰지 못하는 언론사가 과연 종편, 또다른 뉴스채널 등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YTN 노조도 11일 “시경캡의 지휘와 사건데스크의 데스킹을 거쳐 사회1부장의 최종 승인까지 받은 기사에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인 지적 없이 보강취재가 필요하다고 시간을 끌어왔다”며 “사건팀은 리포트 사장을 막기 위해 박 대통령 발언을 들어냈고 최소한의 설명을 하고자 제목과 앵커멘트에 반영했지만 방송 하루 전 이마저도 삭제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제작까지 완료된 기사에서 멋대로 ‘팩트’를 지우고 ‘대통령’을 가린 행위는 기자정신은 물론 YTN 윤리강령과 공정방송협약, 나아가 방송법까지 위반한 것”이라며 “YTN을 ‘정권 보위 방송’으로 타락시킨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로 이 국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입사 8년차인 11기 취재기자와 촬영기자들도 13일 “보고 또 봐도, ‘얘기되는’ 기사가 난도질당했다. 기자가 다른 건 다 참아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기사를 난도질당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며 “YTN의 심장을 도려내놓고 설명이 없다. 후배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한다”며 분명한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반발 양상이 확산되자 이 국장은 14일 “당초 작성한 기사에서 수정을 거쳐 기사 흐름과 무게가 달라지면 제목과 앵커멘트가 바뀔 수 있고 이는 리포트 제작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기사 가치와 기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취재기자와 데스크, 국장 간 다를 수 있는 만큼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기사 완결성을 높여가는 자연스러운 게이트 키핑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만일 공약을 지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경찰 교육시스템의 문제이지 공약의 문제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리포트의 맨 앞부분에 대통령의 대선공약 발표 녹취를 써서 제작한다는 것은 자칫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안이 사내에 잇따른 성명발표로 이어질 만큼 예민한 기사도 아니다”며 “비판을 위한 비판, 정파적 프레임에 갇힌 흠집내기식 기사,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야말로 지양해야할 과제”라고 밝혔다.
앞서 이 국장은 지난해 6월 YTN이 단독 보도한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 글 등 2만건 포착’ 리포트가 갑자기 방송 중단된 후 국정원 개입과 보도국 회의 내용 유출 의혹 등의 논란으로 기자들에게 78.4%의 불신임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사측은 신임 투표가 사규 위반이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한편 13일 이뤄진 YTN 정기 인사에서도 이 국장은 유임됐다. YTN 노조는 공정성을 훼손한 이 국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며 유임을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오는 17일 이 국장의 유임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긴급 집행부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이 국장도 이번 사태에 기존에 “정당한 절차”라는 사측 입장과 다르지 않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