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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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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다는 회사·개인 이익 줄타기 세태
“견제·감시 본연 업무 찾아야” 자성 목소리최근 ‘오바마에게 질문 못하는 한국 기자들’이란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다. 2010년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줬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 중국 기자가 대신 했던 기록을 담은 것이다. 지난달 28일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영상은 캡처 이미지로 전파되며 화제를 뿌렸고, 한국 기자들을 향해 “창피하다”, “수치스럽다”는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반론도 있었다. 당시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여서 현장에 한국 기자들이 별로 남지 않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감 때문에 질문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후 사정이 어떻든 이미 각인된 ‘질문 못하는 기자들’이란 이미지는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지난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회견은 새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열린 것이어서 국민적 관심사가 높았고,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와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기자회견 이후, 정작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대통령이 아닌 청와대 기자단이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질문은 피하고, 사전에 합의된 질문만 대통령에게 던지는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허탈감을 느꼈다. 정해진 ‘대본’에 따라 대통령의 여가생활에 대해 물었던 모 종편 기자는 누리꾼들이 선정한 ‘연기대상’ 수상자로 지명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기자들. 그러나 한편에선 권력의 중심부로 ‘도약’을 꿈꾸는 기자들의 행렬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KBS 기자들을 일제히 ‘멘붕’에 빠뜨렸던 민경욱 전 KBS 앵커의 청와대 대변인 임명 소식. 그날 아침 현직 문화부장으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단신 기사 승인까지 낸 그는 오후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했다. 최소한의 유예기간도 없이 청와대로 직행한 데 대해 언론계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윤리규정 위반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상파 3사 뉴스와 주요 신문사 지면에선 이 같은 비판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 전까지만 해도 KBS 문화부장으로 9시 뉴스에 나와 데스크 분석을 하던 그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공식 브리핑하는 모습이 아무 거리낌 없이 전파를 탔다.
KBS 기자들은 “남은 우리들의 자존감을 어떻게 할 거냐”며 개탄했고, 새노조는 “정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방송을 해온 KBS 스스로가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초래했다”며 자괴감을 토로했다. KBS의 한 기자는 “가장 큰 걱정은 KBS 뉴스를 정권과 한 몸으로 바라볼 국민들의 시선”이라며 “어제까지 KBS 기자였던 자가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간 마당에 어떻게 우리 뉴스를 믿어달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비단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 한 논설위원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든 이런 행동이 언론 전체 신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사 한 중견기자도 “최소한의 양식을 지킬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앞뒤 안 가리고 버선발로 달려가는 모양새는 위험하다”며 “기자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언론계 전반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 일간지 한 중견기자는 “민경욱 전 앵커의 청와대행은 개인적 일탈 차원을 넘어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으로 황폐해진 언론환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MB정권에서 임명된 낙하산 사장들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아무런 도덕적 심판을 받지 않으면서 기자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하루아침에 펜대를 내팽개치고 청와대 한복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황폐해진 언론환경에서 기자들이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의 기본 사명을 망각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은 감추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내놓으며 ‘눈도장’만 받기를 원한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이전 정부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바깥에서 보는 시선이나 평가를 신경 쓰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위’만 바라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간지 중견기자는 “청와대라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정권과 전략적인 거래를 하는 것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자들이 본연의 자세를 벗어나서 회사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줄타기 하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고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며 “일정한 임계점을 넘은 상황에서 기자들이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