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전 KBS 앵커의 청와대행이 연일 언론계 핫이슈다.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청와대로 간 언론인 출신도 한 둘이 아니라지만, 그의 행보는 해도 너무 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 KBS의 간판 앵커로 활약하다가 돌연 박근혜 정부의 ‘입’을 자처하고 나선 그의 선택은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을 갖기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청와대에서 대변인 내정 사실을 발표하기 3~4시간 전까지만 해도 현직 문화부장 자격으로 태연히 KBS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기사 지시까지 내렸던 그다.
사표도 내지 않고 청와대로 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KBS는 뒤늦게 “전날(4일) 사표를 냈고 5일 면직 처리가 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궁색한 변명이다. 민 전 앵커는 4일 9시 뉴스에서 ‘문화재 복원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제로 직접 데스크 분석을 진행했다. 사표를 낸 당일, 그것도 청와대 입성을 만 하루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시청자 앞에 ‘KBS 문화부장’ 이름으로 리포트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윤리강령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KBS는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이므로 ‘정치활동’ 제한 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역시 궁색하다 못해 치졸하다. KBS의 설명대로라면 바로 전날까지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청와대에 들어간다 해도 아무런 문제를 삼을 수 없다.
이미 KBS를 퇴직한 사람에게 윤리강령을 들이대 징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 있다. 기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남아 있는 KBS 구성원들에게 윤리강령에서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이유, 즉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라는 의미를 새삼 환기시키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청와대 대변인은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기자들은 오히려 민 전 앵커가 정당이 아닌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나타냈다. 오죽하면 이제 겨우 4년차에 불과한 KBS 기자들이 그를 향해 “권력을 변호하고 대변하는 일을 맡아 회사를 떠났다”며 “국가를 위한 헌신이 아닌 정권을 위한 헌신”이라고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KBS 9시 뉴스 앵커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 것은 단순히 보직이 바뀐 것에 불과하다”며 조롱 섞인 일갈을 던졌다.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공영방송 KBS의 신뢰도와 위상 추락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또한 그의 청와대행은 ‘정권과 KBS는 한몸’이라는 비판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그의 10년 아래 ‘후배’ 기자들이 “마지막 남은 KBS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행위”라며 분노하는 이유다.
민 전 앵커가 청와대로 가기 직전, 현직 문화부장으로서 보여준 ‘처신’도 논란을 사기 충분하다. KBS 9시 뉴스는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국내 관광 활성화 방안을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톱뉴스로, 게다가 두 꼭지로 보도했다. SBS가 5번째, MBC가 18번째로 보도한 것과도 차이를 보인다. JTBC ‘뉴스9’는 아예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특이할만한 점은 두 리포트 모두 문화부에서 맡았다는 점이다. 민 전 앵커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라면 이때는 대변인 제안을 두고 그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KBS 한 기자는 페이스북에서 “평소 같으면 청와대 출입기자가 할 만 했던 대통령 기사를 굳이 자신이 부장으로 있던 부서에서 리포트를 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전직 앵커이자 현직 부장의 청와대행이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는지, KBS는 5일 그의 대변인 임명을 단신 처리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임명 당시 이를 둘러싼 논란을 주요 뉴스로 보도한 것과는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이제 포털사이트에 ‘민경욱’이란 이름을 검색하면 대통령비서실 소속의 정무직공무원으로 소개된다. KBS에서 면직 처리가 됐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인 6일 그는 신임 대변인으로서 첫 브리핑을 가졌다.
청와대는 늘 그렇듯이 비판 여론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 역시도 온갖 성토와 규탄의 목소리들을 잠시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KBS에 남아 있는 기자들은 비난과 조롱 섞인 시선들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기자들이 그를 향해 묻고 있다. “KBS에 있는 기자들의 자존감을 정녕 어찌할 것인가”라고. 대변인으로서 기자들 앞에 서기 전에,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 역시 ‘기자’라고 생각했던 많은 후배와 동료, 선배들에게 먼저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