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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인신공격에 시달리는 기자들

욕설·협박 모자라 신상털이까지…정신적 스트레스·압박감 호소

김희영 기자  2014.02.05 13: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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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합일간지 A기자는 지난해 극우 성향의 회원들로 구성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신상털기’를 당했다. 일베 게시판에는 A기자의 출신 학교와 얼굴 사진 등이 올라왔다. 소속 언론사의 파업에 참여했던 A기자의 사진을 보고 일베 회원들은 “알고보니 좌빨(좌파 빨갱이) 기자”라며 비상식적 비난을 이어갔다. 당시 게시물을 직접 본 A기자는 불쾌함을 느꼈지만 “기자로서 흔히 겪는 일”이라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2. 경제지 B기자는 최근 한 누리꾼을 고소했다. 이 누리꾼은 B기자가 쓴 기사로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자 인터넷 게시판에 B기자에 대한 욕설과 협박성 글을 올렸다. 참다못한 B기자는 이 누리꾼을 허위사실유포죄로 고소하고 경찰서에 출두해 고소인 조사까지 마쳤다. 얼마 후 피고소인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용돈을 모아 주식 투자를 하던 20살 남짓의 남자 대학생이었다. “홧김에 저지른 일”이라며 용서를 구하는 학생의 호소에 B기자는 소를 취하했다.


과거 지면에 한정되던 뉴스 콘텐츠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타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 언론 보도에 대한 피드백도 댓글이나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팩트가 틀린 곳을 고치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기사에 대한 잘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상식에 반하는 인신공격이 많은 게 요즘이다. 욕설은 기본이고 협박, 심한 경우엔 집주소와 출신 학교, 사진까지 인터넷에 올린다. 이렇게 벗겨진 기자의 신상정보는 인터넷 이곳저곳에 떠돌아다닌다.

기자들은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B기자는 “피고소인이 올렸던 악성 게시물을 만약 나 혼자 봤다면 무시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포털사이트에 아들 이름을 검색해본 부모님이 크게 상처를 받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A기자는 “일베는 원래 불건전한 문화가 만연한 공간이라 불쾌함은 잠시였다”면서도 “그러나 ㄱ대학교 학생들이 내 신상을 털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정말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A기자는 지난해 ㄱ대학교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기사화했고, 해당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ㅅ대학교 출신인 A기자가 모교를 대학 랭킹 톱3에 진입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기사를 썼다’는 비논리적인 글들이 올라왔다. A기자는 “지식인들이 모인 공간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게 어이없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A기자는 일 년 동안 두 번의 신상털기를 당했지만 “해명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까봐” 감정을 억눌렀다.
연차가 낮은 기자일수록 사이버 인신공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온라인 편집국에서 근무하는 1년차 C기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사를 쓰고 나면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일베에 내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동료 기자가 일베 회원들로부터 ‘신상털기를 당하고 싶냐’는 협박을 당한 이후 생긴 트라우마다.

ㅅ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신상털기를 겪어본 적이 있다는 2년차 D기자는 “ㅅ대학교 출신 친구가 내 신상을 턴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그 글이 베스트게시물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며 “무서워서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ㅅ대학교의 특정 입시전형을 두고 학내 커뮤니티에서 비하 발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것이 ‘화근’이었다.

D기자는 “이후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연관검색어에 ‘○○○ 기자’라고 떴다”며 “신상이 털려서 사람들이 많이 검색해봤기 때문인 것 같다. 기자로서 언젠가 생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움찔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자들은 사이버상의 인신공격에 대해 “일상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종합일간지 E기자는 “악플(악성 댓글)이 달리는 것은 워낙 자주 있는 일이다보니 신경도 안 쓴다”며 “처음엔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이제는 아예 보지를 않는다. 무대응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는 누리꾼에게 반박성 답장을 보내거나, 악플러의 연락처를 찾아내 항의하는 것이 최대한의 조치다.

D기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일정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며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통해 기자를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대처가 힘들기 때문에 회사나 기자협회가 나서줬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연속교육팀장(변호사)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 일반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인내를 요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욕설, 협박, 신상털기 등은 그 자체가 불법행위이다. 인신공격이 도를 지나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 팀장은 “‘기자가 그정도는 참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원인”이라며 “그건 개인이 결정할 문제다. 사이버상의 폭력은 ‘기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