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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과 언론인

[특별기고]박종률 한국기자협회 회장

박종률 한국기자협회 회장  2014.01.22 12: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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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  
 
대통령 신년회견 기자들 준비 부족
‘삼성가 소송’ 저널리즘 고개 숙여


“이런 기 어딨어요?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바위는 아무리 단단하나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하다 해도 살아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누적 관객 1000만명을 훌쩍 뛰어 넘은 영화 ‘변호인.’ 15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등급을 감안하면 한국인 4명중 1명꼴로 ‘변호인’을 본 셈이다.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 고문 피해자인 대학생 진우가 남긴 명대사는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진한 감동과 여운을 드리우고 있다.

3년여 전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번역서가 베스트셀러로 부상하면서 정의(正義)에 대한 대중적 담론을 촉발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많은 학자들은 정의라는 개념 자체보다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대중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하면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의롭지 못하다는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3년여가 흘러 이번에는 영화로 옷을 갈아입은 ‘옳음’, ‘의로움.’ 여전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그 무엇인 것이다. 특히 영화 ‘변호인’은 이 시대를 사는 언론인들에게 새삼 반성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불의에 침묵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당연하면서도 묵직한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기자로서 ‘변호인’을 관람한 뒤 과연 저널리즘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또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제목은 왜 변호인일까? 내항의 곱과 외항의 곱이 항상 같아야 하는 비례식을 상상해봤다. ‘변호사 : 기자 = 변호인 : 언론인.’ 변호사와 기자가 직업적 명칭이라면 변호인과 언론인은 그 역할에 무게중심을 둔 표현이 아닐까.

실제로 죄의 유무나 형량을 판가름하는 형사재판에서는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라도 변호인에 선임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불의와 왜곡이 용인되는 사회라면 기자 신분증보다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세와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요체는 자격증과 신분증이 아닌 열정과 끈기의 실천에 있다. 언론은 국민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진실을 알리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송우석 변호사는 인권과 현실에 눈을 뜨기 전 “방송과 신문에 나오는 것을 믿지 못하면 뭘 믿느냐”고 친구인 ‘부산신보’ 기자에게 소리친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현실은 권력층과 신문사 간부의 검은 거래 속에 기자의 원고는 버려지고 사실을 왜곡한 큼지막한 기사가 신문지면을 채운다. ‘변호인’은 시작과 함께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라는 점을 자막에 적시했지만 언론의 창피한 모습이 30년 전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마(靑馬)의 해가 밝자마자 벽두부터 언론과 관련한 이슈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년 만에 처음 이뤄진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매서운 질문 한 번 던지지 못한 ‘나약한 저널리즘’이 여론의 따가운 뭇매를 맞았다.

이른바 ‘불통(不通)’ 논란이 제기됐던 만큼 기자들은 정치권력의 감시자로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도록 당당한 자세와 철저한 준비를 했어야 옳았다. 왜냐하면 송우석 변호사가 일갈한 대로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건희 삼성회장과 이맹희씨의 상속소송과 관련해서는 언론계 안팎에서 ‘고개숙인 저널리즘’이라는 자조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맹희씨가 변호인을 통해 최후진술로 대신한 해원상생(解寃相生)의 화해편지는 수십여 군데 언론들이 전문을 온라인상에 기사화했지만 하루도 안 돼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버티기 힘들었다”는 한 언론사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접하며 자본권력에 흔들리는 언론의 현주소를 씁쓸히 헤아려본다.

그러나 기쁨과 희망의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 17일 법원이 MBC 노조원들에 대한 사측의 징계처분을 전부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44대 0’…. 법원이 해직자 6명을 포함해 정직 처분을 받았던 우리의 자랑스런 동료 44명 모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더욱이 이번 판결의 의의는 노조가 방송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을 정당한 근로조건으로 판단한 데 있다. 이는 영화 ‘변호인’에서 보듯 단순한 변호사와 기자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비판과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변호인과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이 사회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데 더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그럼에도 재판부의 ‘복직판결’을 반박하고 있는 MBC 사측의 행태는 불의(不義)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언론은 반성과 실천으로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기자협회 창립 50주년이다. 새로운 도약과 실천을 다짐하는 특별행사로 3월 8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일원에서 ‘국민과 함께 달리는 전국 언론인 마라톤 대회’가 개최된다. 우리 모두 나와 국민의 손을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리면서 언론의 역할과 기자의 소명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