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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무효 판결에 100여명 몰려 환호

모처럼 웃음꽃 MBC 분위기 스케치
"역사에 남을 판결...우리가 옳았다"

김고은 기자  2014.01.17 15: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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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이용마 해직기자)

MBC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2년 전 노조 파업이 정당했다는 법원 판결이 불러온 마법이었다. 사상 최장기였던 170일간의 파업으로 지치고, ‘불법파업’이란 낙인과 부당인사, 조직문화 붕괴로 병든 마음을 안고 살던 이들이 1년 반 만에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17일 오전 9시 53분, 서울남부지법 310호 법정. 예정보다 3분가량 늦게 법정에 들어선 박인식 부장판사는 먼저 두 개의 민사 사건 선고 결과를 차분히 읽고 나서는 무슨 이유인지 뜸을 들였다. 이내 ‘정영하 외 43인’을 원고로 한 MBC 해고무효확인등의소송 판결문을 집어 들더니, 이례적으로 “선고하기에 앞서 판결의 이유를 설명하겠다”면서 다소 긴 판결문 요지를 읽어 내려갔다. 법정의 방청석을 가득 메울 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고민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일반 기업과 다른 방송사 등 언론매체의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올바른 여론의 형성을 위하여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 따라서 방송사에 있어서 공정방송 의무는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위 공정성의 보장 요구는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근로조건에 해당한다.


… MBC노조가 이 사건 파업에 이르게 된 주된 목적은 특정 경영자를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고 MBC의 경영진이 단체협약에 정한 공정방송협의회 등을 제대로 개최하지 않고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인사원칙에 반하여 임의로 교체하는 등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여러 절차적 규정들을 위반하고 인사권을 남용하는 방법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경영진에 대하여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판사가 여기까지 읽었을 때 이미 방청석 이곳저곳에서 소리 없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판사가 “일부 징계 절차상 하자가 인정되고 주된 징계사유인 파업주도 및 참여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한편, MBC의 조속한 정상화와 구성원간의 내부적인 갈등의 해결을 위한 요청을 감안하면 원고들에 대한 징계처분은 재량권의 일탈, 남용에 해당하여 위법하다”고 못을 박자, 서로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며 기쁨을 나눴다.



   
 
  ▲ 17일 해고 등의 징계가 무효라는 법원 판결 직후 여의도 MBC 남문 앞에서 열린 자축의 자리에서 해직자들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승호 해직PD, 박성호 해직기자, 강지웅 전 MBC노조 사무처장, 정영하 전 MBC노조 위원장, 이용마 전 MBC노조 홍보국장.(박성제 해직기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예상 못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판결 직전까지만 해도 해직자 6명 중 몇 명이 구제를 받을 것이냐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원고 측 변론을 맡았던 신인수 변호사조차도 “이런 정도의 판결이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해고와 정직 등의 징계가 모두 무효일 뿐 아니라, 징계의 근거가 된 파업에 대해서도 정당한 것이었다는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공정방송이 언론매체에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며, 공정방송 요구를 기치로 한 언론사 파업은 정당하다는 폭넓은 해석을 내린 것이다.

파업의 정당성을 확인해준 사법부의 판단에 MBC 구성원들은 환호했다. 판결 소식은 전화와 문자메시지, SNS를 통해 급속도로 전해졌고, 소식을 접한 이들은 MBC노조 사무실로 몰려와 서로 기쁨을 나눴다. 자축의 의미로 노조가 여의도 MBC 남문 광장 앞에서 급조한 ‘번개’ 모임에는 1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몰려와 서로에게 축하를 전했다.

이날 판결에 대해 이성주 MBC노조 위원장은 “역사에 남을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위원장은 “이 시대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양식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법으로 증명됐다”고 환영했다.

MBC노조 홍보국장으로서 파업을 이끌다 해고됐던 이용마 해직기자는 목이 멘 목소리로 “다른 것보다 우리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받았다는 게 대단한 성과”라고 평했다. 그는 “(판결에 대해) 기대는 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없었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오늘 법정에도 나가지 않았다”면서 “설사 이긴다 해도 파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징계가 과하다는 정도를 예상했는데 아주 정확하게 우리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서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박성호 해직기자(전 MBC 기자회장)도 “보여주는 것보다 감추는 게 업이 된 뉴스를 제대로 바꾸자고 일어선 게 정당하다는 해답이 나왔다”고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아직도 정치적 책동과 이념적, 정파적 행태를 노정하고 있는 MBC 내부의 책임 있는 분들이 판결문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어 “YTN 해직 언론인 6명과 오늘 항소심에서도 승소한 국민일보 조상운 기자 등 우리보다 앞서 해직되어 고통 받고 있는 언론인 동료들이 먼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 법원 판결을 자축하는 자리에 모인 MBC노조 조합원과 구성원들이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MBC는 “깊은 유감”을 나타내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성주 노조 위원장은 “이번 판결은 해직자 문제 해결에 대해 입법부가 결의하고 사법부가 답한 것”이라며 “즉각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항소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김종국 사장이 됐든 다음에 오는 사장이 됐든 역사 앞에 과오를 만드는 길”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