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심의’ 행태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자의적 기준을 들이대 징계를 일삼는 방심위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법원에서도 방심위의 과잉 심의에 철퇴를 가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방심위는 오히려 더 모호하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심의규정을 개정해 향후 이중잣대, 정치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이 신설된 29조2항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다. 방심위는 이 조항 신설과 함께 7조3항의 ‘자유민주주의의 신장 및 민주적 기본질서’ 부분도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이에 대해 언론·시민단체들은 “국가보안법의 방송심의버전”이라며 반발했고, 방심위 야당 추천 위원들도 “추상적인 표현 탓에 자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크다”며 반대했지만, 다수인 여당 추천 위원들의 밀어붙이기로 개정안은 그대로 관철됐다.
야당 추천 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검열’이라는 비판을 더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고, 헌법의 기본질서 뿐만 아니라 공권력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송에 대해서도 제재할 수 있는 세부적인 규정을 두지 않는 한, 계속해서 통치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제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방심위는 ‘종북’ 논란 등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 일관성 없는 심의 규정 적용을 되풀이해왔다. 가장 최근 논란이 된 것이 JTBC에 대한 중징계다. 방심위는 지난해 12월 JTBC ‘뉴스9’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건을 다루면서 당사자인 김재연 의원 등을 출연시켰다는 이유로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을 문제 삼아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를 의결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전말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해 역시 중징계인 ‘경고’를 내렸다. 해당 방송은 1심에서 무죄로 판명난 국가정보원의 무리한 간첩 기소를 다뤘지만, 여당 추천 위원들은 아예 ‘간첩’으로 규정하며 제작진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 |
 |
|
| |
| |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만 위원장.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
|
| |
방심위는 또 지난해 11월 시국미사 도중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해서도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으로 ‘주의’ 이상의 법정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언론의 과도한 ‘종북’ 보도 실태를 지적한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에 대해서도 15일 의견진술을 진행한 뒤 법정제재가 나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같은 ‘종북’ 관련 보도도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방심위는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가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을 ‘종북’ 인사로 규정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서는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을 ‘종북세력 5인방’으로 언급한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대해서도 지난해 7월 행정지도인 ‘권고’를 내리는데 그쳤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나 이념 문제도 이중 잣대를 피해가지 않는다.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미화한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던 방심위는 공산주의자였던 음악가 정율성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주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친일’은 괜찮지만, ‘친공’은 좌시할 수 없다는 태도다.
방송계에선 방심위의 정권 눈치보기가 도를 넘었다고 지적한다. 일부 위원들이 연임을 노리며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 한 중견 기자는 “여당 추천 위원들이 노골적으로 청와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심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위원회 구성의 6대3 정파적 구조를 해소하고 차제에는 사실상의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심의하는 심의 구조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8일 서울고등법원이 방심위와 방통위가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해 내린 ‘주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방송사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헌법이 방송 자유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심의 방식은 헌법의 요청과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사측이 나서지 않을 경우 제작진을 원고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헌법소원을 청구해 제작 자율성 침해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받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