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은 방송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정확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정부는 계획안의 서두에서 “정부 차원의 방송 관련 종합계획은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 이후 처음”이라며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가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 등에 중점을 둔 계획이었다면, 이번 종합계획은 ‘방송산업의 성장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을 ‘언론’이 아닌 ‘산업’으로 보는 정부의 관점은 CJ헬로비전을 중심으로 한 유료방송 업계 지원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방송협회가 “유료방송의 요구사항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요구사항들이 반영된 반면, 지상파의 요구에 대해서는 묵살과 외면에 가까울 정도로 어떤 것도 구체적으로 반영된 내용이 없다”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핵심 쟁점인 8VSB 도입과 지상파 MMS(다채널 서비스) 허용에 대해 일각에선 케이블TV 업계와 지상파가 ‘윈윈’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득이 큰 쪽은 케이블 업계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케이블 업계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 변조방식인 8VSB가 도입될 경우 디지털TV로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는 약 500만 가구에 대해 사실상 디지털 전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아날로그 채널 재배치로 여유 주파수 대역이 발생하면 이를 이용해 UHD와 같은 차세대 방송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8VSB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상파에 주어진 MMS도 사실상 8VSB 허용을 위한 일종의 ‘패키지’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8VSB 정합방식을 케이블TV에 허용할 때 반드시 케이블 MMS를 허락해야만 방송 프로그램의 축소 없이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QAM 방식에 비해 전송 효율이 떨어지는 8VSB로 채널수를 줄이지 않고 전송하려면 다채널 서비스 도입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8VSB 도입으로 지상파의 MMS 허용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직접수신율 제고 등 지상파 플랫폼을 강화시킨다는 유인이 사라진다”며 “사실상 지상파 플랫폼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 소장은 “지상파 MMS 도입에 대한 유료방송의 반발도 이전에는 실질적인 위협을 느낀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 이를 우려하는 것은 일종의 엄살이거나 표정관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지상파 방송의 미래를 말살하는 정책”이라며 아우성을 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지상파 직접 수신 환경 개선 노력 없이 저조한 직접 수신율을 방조하고, 지상파 MMS 도입과 뉴미디어 도입 등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뒤늦게 지상파 플랫폼에 닥친 위기를 직시하고 UHD 등 차세대 방송용 700㎒ 주파수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이 역시 방송광고 규제 완화와 같은 ‘젯밥’에 더 관심이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정보도에 눈 감고 콘텐츠 제작 능력 향상이나 네트워크 관리에 소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며 “진정 ‘국민행복’을 바란다면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편성에 대한 자율성 보장 등에 대한 약속을 먼저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