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현직 비서관의 대기업 인사 청탁 의혹을 보도한 기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기자의 통화 및 문자 기록 등을 조회해 ‘취재원 색출’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고위 공직자가 관계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과잉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취재원 보호 원칙을 무시하고 언론 자유를 위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의 인사청탁 의혹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해 경찰의 ‘취재원 색출’ 대상이 된 김지영 시사저널 기자는 1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사실 지난 9월 1차 조사 당시 혹시나 개인 통화 내역이 조회되는지 수사관에 물어봤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만약 언론의 명예훼손 사건에 이 같은 통신 조회 선례가 남는다면 앞으로 과연 기자들이 전화 취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추가 취재 내용에 따라 향후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언론 고유의 ‘취재원 보호’ 원칙이 쉽게 침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계 안팎의 우려가 높다. 내부 고발이나 제보를 하려는 취재원에 대한 직·간접적인 위축 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기자에 대한 통화기록 조회가 쉽게 이뤄지면 어느 누구라도 통화를 꺼릴 수밖에 없다”며 “다른 제보자들까지 막으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도 6일 성명을 통해 “언론자유 침해”라며 “명백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통화 조회는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인 박주민 변호사는 “명예훼손은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와 어떠한 목적에서 기사를 썼는지를 따지면 되는 것”이라며 “누구와 통화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기자의 통화 내역이나 문자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정보를 준 취재원을 알고 싶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필요 이상의 통화기록 조회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도 연결된다. 김지영 기자는 “당시 사생활을 들여 봤다는 생각에 상당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정수장학회-MBC 비밀회동’ 보도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도 지난 2월 첫 공판에서 검찰이 10개월간의 장기간 통화 기록을 조회해 논란을 빚었다. 최 기자 측 김진영 변호사는 “혐의와 관계없는 조회는 동선과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돼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통신 조회에) 법원 허가라는 통제 장치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취재원 보호가 사안별 ‘고무줄 잣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한국신문윤리실천요강 제5조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취재원 보호 조항을 두고 있지만 구체적 내용이 없다.
법학박사인 심석태 SBS 국제부 부장은 “독일 헌법재판소는 취재원을 찾으려는 검찰의 언론사 압수수색이 언론자유를 위한 정보 제공자와의 신뢰를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했다”면서 “우리는 언론사 압수수색이나 통화기록 조회를 해도 제대로 문제제기가 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심 부장은 “취재원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점과 합의가 없다”며 “경우에 따라 취재원 보호 문제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사건은 고위 공직자의 비판 언론과 기자에 대한 소송 남용 사례의 하나로도 주목된다. 언론의 ‘피로감’을 높여 기자들을 ‘자기 검열’하도록 만드는 악영향 때문이다. 지난 10월 청와대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와 관련한 국민일보 보도가 허위라며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일보도 금품수수 의혹 제기 보도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1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올해 국제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64위였다. 언론에 대한 법과 제도가 뒤떨어지고 언론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언론에 대한 법적 조치를 자제하고, 선진국 수준의 언론 자유를 위해 각계가 함께 취재원보호법 등 언론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시사저널은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1팀이 청와대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이 시사저널 기자 3명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사건을 조사하며 시사저널 김지영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 및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송수신 내역, 편집국 직통전화 통화 기록 등을 조회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지난 11월21일 김 기자가 경찰의 2차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 기자에게 휴대전화 통화 내역이 기록된 공문서를 보여주며 통화 내용과 해당 기사의 취재원 여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