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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제한 '기능형 앵커'…"뉴스생산 시스템 혁신 이뤄야"

'젊은 앵커 중용' 뉴스 달라졌나

김고은 기자  2013.11.27 15: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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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영방송 KBS와 MBC는 최근 파격적으로 40대 초반 남성 앵커를 기용하면서 ‘젊은 피’로 새단장했다. 사진은 KBS 최영철 앵커(위 사진 왼쪽)와 MBC 박상권 앵커(아래 사진 왼쪽). (사진=KBS, MBC 제공)  
 
얼굴 바뀌어도 공정성 논란 여전
‘월터 크롱카이트 형’ JTBC 눈길


최근 KBS와 MBC 메인뉴스 앵커가 모두 ‘젊은 얼굴’로 바뀌었다. KBS는 지난달 21일 ‘뉴스가 젊어집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평일 ‘뉴스9’ 앵커를 40세의 최영철 기자로 교체했다. 15년 전 37세의 나이로 ‘뉴스9’ 진행을 맡았던 김종진 앵커 이후 가장 젊은 편이다. MBC도 지난 18일 입사 17년차의 박상권 기자를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로 투입했다. 전임 권재홍 앵커에 비해 15년가량 젊어진 것이다.

젊은 앵커들은 책임감만큼 포부도 컸다. 최영철 앵커는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KBS 뉴스의 새로운 변화와 젊은 감각을 함께 이끌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면서 “KBS 뉴스라면 믿을 수 있다는 어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박상권 앵커도 “진실 앞에 겸허하겠다”는 소신을 밝히며 “편견 없이 뉴스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1주일여가 지난 지금, 안팎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앵커만 젊어졌을 뿐, 권력에 우호적인 공영방송 뉴스의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내부에서도 “보도책임자들이 그대로인데 앵커만 바뀐다고 뉴스가 달라지겠나”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KBS는 리포트수가 줄고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등 변화도 있지만 전반적인 뉴스가치 판단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에도 뉴스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앵커들의 출사표는 번번이 공염불에 그치기 일쑤였다. 앵커들에게는 대개 ‘뉴스의 얼굴’ 그 이상의 역할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는 한국적 앵커 시스템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한국식 앵커 제도는 뉴스의 편집과 진행을 앵커가 동시에 관장하는 미국식과 전문 진행자(presenter)로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영국식을 절충한 형태로 평가된다.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한국 TV뉴스 양식과 취재 시스템: 그 특성과 한계’라는 논문에서 “편집권과 조직 관장 권한은 보도국장이 유지하고 앵커는 뉴스의 진행에 관해서만 책임을 지는 지극히 기능적인 앵커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앵커는 뉴스의 구성 요소 가운데 “비교적 중요한 한 가지 요소”일 뿐이라는 얘기다.

대개 보도국에서 다양한 부서를 두루 거치거나 생방송 능력이 검증된 기자들이 앵커로 발탁되고 이들은 편집회의에 참여해 흐름을 파악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뉴스의 생산과 편집에 관여하지는 못한다. 신경민, 최일구 전 ‘뉴스데스크’ 앵커나 김성준 SBS ‘8뉴스’ 앵커처럼 다소 주관이 개입된 코멘트를 하는 경우에도 전체 뉴스 흐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이 같은 한국적 앵커 시스템에서 차별화를 꾀한 것이 JTBC다. 지난 9월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이 앵커로 직접 나선 이후 JTBC ‘뉴스9’는 미국식 앵커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CBS뉴스의 명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손석희 사장 역시 뉴스의 제작부터 편집, 진행, 기자들의 인사에 이르는 거의 전 부문에서 권한을 행사한다. 손 사장은 매일 뉴스를 마무리하는 엔딩곡도 직접 선곡하고 있다.

손석희 사장이 앵커로 나선 이후 JTBC 뉴스는 크게 달라졌다는 평이다. 공영방송과 달리 국정원 선거 개입 등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대통령의 동정보도는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사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다양한 입장도 제시한다.

많은 이들이 JTBC 뉴스를 미국의 인기 드라마 ‘뉴스룸’에 비유하며 “모처럼 뉴스 볼 맛이 난다”고 후한 평가를 쏟아낸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 기자들은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뉴스룸’을 즐겨본다는 한 KBS 기자는 “‘뉴스룸’을 보면서 우리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JTBC가 해내는 것을 보면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JTBC의 뉴스 시스템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KBS의 한 기자는 “JTBC 뉴스가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손석희 사장이라는 개인의 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우리의 정치 현실이나 언론 상황을 감안할 때 앵커가 뉴스를 좌지우지 하는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 기자도 “앵커의 역할을 어디까지 확대하고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있을 것 같다”면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MBC의 한 기자는 “뉴스의 문제는 앵커가 아니다”라며 뉴스를 만드는 시스템 전반의 개혁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앵커를 바꿀 게 아니라 앵커를 바꾸는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며 “불공정보도의 책임자들이 보도라인을 꿰차고 있는 상황에선 손석희 앵커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