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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중 사건 영향주는 보도 안된다"
방통심의위 '추적60분' 중징계 논란

'공무원 간첩단 사건' 편에 경고…"보도, 시사프로 모두 문 닫으라는 소리"

김고은 기자  2013.11.21 18: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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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방통심의위는 21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 9월 7일 방송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편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위반으로 법정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 조치를 의결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 미리 ‘여론재판’을 내림으로써 상급심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며 한 목소리로 법정제재를 주장했다. 특히 권혁부 부위원장은 “재판이 언론의 여론재판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주장하면서도 1심에서 이미 무죄 판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 “중국 화교가 탈북자로 위장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간첩 활동을 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사실상 재판부 판결을 부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권 부위원장은 “국가 안위가 걸린 간첩단 사건의 무죄 판결에 대해 이례적으로 많은 제작비를 들여서 수사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내용을 제작해 방송한 데 주목한다”면서 “판결이 있기도 전부터 무죄를 전제로 취재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변호인과 피고인에 유리한 증거들을 수집해서 공소 사실을 비판하는 방송 내용 자체가 남은 2,3심 재판의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고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방어권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매우 불공정하다”며 “장외 판결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박만 위원장도 “취재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선고 전부터 이미 판결 결과를 예상한 뒤에 판결이 나자마자 2심 재판 전에 방송하려는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내레이션에서 피고인의 간첩 혐의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는데, 이처럼 무죄로 단정하는 것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심층취재라는 변명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한 통할 수 없는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이 과연 어떤 공공의 이익이 있나, 지금 이 시점에서 꼭 방송을 했어야 하나 의심스러운 지점이 있다”면서 “한 마디로 여론재판을 유도할 가능성이 매우 큰 프로그램”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야당 추천의 장낙인 위원은 “방송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국정원이 간첩 혐의로 제시한 증거 자료가 잘못됐다는 걸 파헤쳐 나가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장 위원은 “방송을 통해 재판부에 무죄 판결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국정원의 답변 내용도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에 심의규정 9조와 11조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제재수위를 논하기에 앞서 방송심의규정 제11조, 즉 “방송은 재판이 계속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되며, 이와 관련된 심층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규정의 적용 여부를 두고도 야당 측 상임위원들이 “해당 사항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으나, 박만 위원장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이를 일축했다.

박경신 위원은 “이런 식으로 규정을 적용하면 재판을 청구함으로써 특정 사안의 방송을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게 된다”며 “방송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통신심의규정을 보면 방송심의규정과 반대로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심의를 중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심의 결정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방송이 재판 내용을 다루면 안 된다, 된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도리어 우리가 재판에 영향을 주게 될 수 있으므로 방송심의규정 11조는 매우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낙인 위원도 “재판에 악영향을 주려 하거나 재판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건에 대해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탐사보도프로그램에 대해선 심의규정 11조가 적용되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 중인 사건을 다룬 방송에 대해 심의규정 11조를 적용한 심의위의 중징계 결정은 상당한 여진을 남길 전망이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PD연합회, 언론시민단체 등은 이날 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사회의 상당수 이슈들은 형사소송이나 행정소송 혹은 개별적인 민사소송 등의 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심의규정 11조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보도, 시사프로그램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경호 언론노조 수석 부위원장도 “재판 중인 사건 보도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보도할 수 없다면 법원 출입 기자만 남기고 검찰 출입기자는 다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 “오늘 방심위의 결정은 훗날 역사에 웃지 못 할 코미디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진표 한국PD연합회장은 “비단 ‘추적60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5년간 시사, 예능 가리지 않고 무차별 표적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재판 중인 사건은 다룰 수 없다는 방송심의규정을 철폐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는 계속 짓밟힐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PD연합회는 직후 바로 성명을 내고 “방심위는 국정원을 비호하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며 “언론의 공정성과 공익성은 쓰레기통에 처박고, 오로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국정원을 비호하는 한 기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중징계를 받아야 하는 쪽은 방심위”라며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방심위 해체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