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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나의 편집 라이프

아주경제신문 이낙규 기자  2013.11.04 1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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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은 찬물에 머리를 감는 것만큼이나 싫다.
꽃샘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하루의 시작을 뒤척인다. 하지만 어쩌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문쟁이 팔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터로 향할 준비를 한다. 간단히 세면을 마치고 급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지만 텅 빈 버스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나를 남겨두고 저 멀리 떠나간다. 10년 같은 10분이 지나고 사람들로 꽉찬 버스가 내 앞에 선다.

만원 버스는 꽉 끼는 청바지만큼 싫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는 차 안,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젖은 우산까지 챙겨야하기 때문에 오직 한 손만으로 육중한 몸을 지탱해야만 한다. 평소보다 힘든 출근길, 앉아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움직임, 스쳐 지나가는 정류장들의 특성, 동물적인 감각까지 발휘하여 겨우 한 자리 차지했지만 몸은 이미 바닥에 놓인 우산처럼 널브러져 있다. 부랴부랴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신문을 맞이한다.

매일 신문을 본다는 것은 피곤한 날 하기 싫은 양치질만큼 싫다.
기사를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집요함이 꿈틀거린다. 놓친 기사는 없나 인사란에서 부음란까지 활자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만다. 오죽하면 신문을 제대로 읽으려고 <신문읽기의 혁명>이라는 책까지 읽었겠는가. 하지만 다 소용없다. 더 많이 읽으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신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문은 절반도 읽지 못했건만 어김없이 찾아온 회의시간에 마지못해 회의실로 향한다.

회의시간은 나른한 봄날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훈시만큼 싫다.
동료, 선·후배 간 소소한 일상도 이야기 하지만 늘 반복되는 신문 공장 레퍼토리는 말하는 사람만 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딴 짓을 하다가 이내 한두 명씩 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니 입안에서 잔소리가 맴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피곤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못 본 척 넘기고 다 읽지 못한 신문을 뒤적거리며 오전을 마무리한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지면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사가 출고됐나 살펴보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출고된 기사가 한 건도 없다.

기다림은 할 일 없는 주말, TV 앞에서 리모컨을 들고 시간을 때우는 것만큼이나 싫다.
20분, 40분, 1시간……. 긴 기다림이 지나고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데스크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무언의 압력을 보낸다.
눈치가 100단인 데스크가 지금의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알았다. 알았어. 금방 보낼게”
마치 중국집 사장님처럼 말씀하신다. 속는 셈 치고 자리로 돌아가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이내 분노게이지만 놀라갔다. 이제 본격적인 전투모드로 돌변해 간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출고 마감시간에서 한 시간이 지났다고요.”
“거의 다 됐다. 지금 막 쏜다.”

사람들과의 실랑이는 엄청나게 쓰디쓴 약을 억지로 먹는 것만큼이나 싫다.
이번에는 진짜 이겠거니 확인해보지만 양치기 소년에게 휘둘린 마을사람들처럼 또 속고 말았다. 눈앞 보이는 것은 없다. 이미 흥분된 상태, 긴 시간 동안 억눌렀던 짜증을 괴성처럼 쏟아내고 만다. 듣고만 있었던 데스크도 못 참겠는지 이내 언성을 높인다. 결국 주변사람들의 만류로 애써 흥분을 억누르고 고개를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뒤통수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과 밀려오는 후회감에 뒷맛이 씁쓸하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기사 앞에서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린다.

창의적으로 지면을 구성한다는 것은 너무나 꽉 잠겨있는 잼 뚜껑을 여는 것만큼 싫다.
‘박스로 처리할까?, 삽화를 집어넣을까?, 그래픽으로 처리할까?, 다른 기사와 묶어볼까?, 제목은 제대로 달았나?, 레이아웃은 괜찮은 걸까?, 다른 이미지를 찾아볼까?, 뭔가 더 파격적인 것은 없을까?’ 등등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거의 다 열릴 것 같은데 열리지 않는다. 끈끈하게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녹이기 위해 온몸의 혈액을 머리로 올려 보낸다. 막혀있는 한 겹의 뚜껑만 열리면 뭔가 멋지고, 폼 나면서도 군침이 도는 지면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 텐데……. 오늘은 뭔가 안 풀리는 날인지 생각을 접고 현실과 타협한 채 그저 그런 지면을 만들고 있다.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 덧 마감시간, 마음이 조급해 진다.

마감시간에 쫓기는 것은 익숙하지만 이상한 나와 만나는 것 같아서 싫다.
가뜩이나 무언가에 쫓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에게 일각을 다투는 마감시간의 긴장감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초조하고 흥분된 상태, 자판을 치는 손가락도, 의사를 전달하는 말투도 모든 것이 얼빠진 사람처럼 부자연스럽다. 평온할 때, 침착할 때에 나는 없고 허둥지둥, 왔다갔다 당황하는 기색의 내가 있다. 머릿속에선 빨리 이 순간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부랴부랴 옷깃에 달라붙은 깃털을 털어내듯 대장을 교열 위원에게 넘긴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 돌아온 대장 위는 울긋불긋 새빨갛게 불이 났다.
꼼꼼히 봤다고 봤는데 꼭 한 글자 이상은 오타가 나고 만다.

맞춤법을 틀리는 것은 구멍 난 양말이 들통 나는 것처럼 싫다.
어린 시절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것을 티내 듯 밑바닥 같은 국어실력을 내보이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초등학교 1학년도 틀리지 않을 만한 수준의 맞춤법을 보란 듯이 틀리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어진다. 군복무 시절, 공문으로 보내는 한 장짜리 문서에 오타가 25개나 있었다면 내 국어실력을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데스크와 부장, 편집국장의 OK 사인이 떨어지고 강판 버튼을 누르는 순간 팽팽했던 끈이 풀어지듯 지친 내가 의자에 앉아 흐느적거린다.

매일매일 싫은 일들의 연속, 그렇게 싫은 일들을 벌써 9년째 해오고 있다. 새벽녘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만원 버스에 시달리는 것도, 신문을 보고 회의를 하는 것도 싫다. 기사를 기다리고, 기다림에 지쳐 사람들과 다투고, 나오지도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 듯 끙끙거리는 것도 싫다. 마지막으로 한 지면에 무수하게 들통 나는 창피한 맞춤법 실력이 싫고 마감시간에 쫓겨 당황해 하는 부끄러운 나를 만나는 것도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하나의 신문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이른 새벽 만원버스를 피해 거리를 나선다. 텅 빈 버스 안에서 동이 트는 아침 풍경과 함께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집요하게 아니 집착하듯 신문을 파헤치며 대한민국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편집기자들과 교감하는 것은 깨달음의 연속이다.

보다 나은 지면을 위해 선후배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빠른 기사의 출고를 요구하고, 필요에 따라서 데스크들과의 다툼도 마다하지 않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얼굴이 붉혀지는 맞춤법의 콤플렉스를 뛰어넘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마감시간까지 극복하면서 완성된 나의 지면, 그 안에서 얻어지는 달콤한 희열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낙이다.

그렇다! 나는 매일 죽기보다 싫은 일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야말로 편집은 나에게 희로애락을 안겨주는 또 하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