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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찢어진 청바지' 입을까?

TV조선 백대우 기자  2013.11.04 1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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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8월22일.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찬 기자간담회가 있던 날이다.


이날 자리는 박 대통령이 이틀 전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갖는 첫 기자간담회였기 때문에 출입기자 입장에서 모임 시작 전부터 큰 설렘과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은 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박근혜가 바꾸네’, ‘박근혜가 바뀌었네’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이전까지의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초청된 반장(팀장)급 출입 기자들은 말진급 ‘마크맨’들과 달리 유세 현장 등에서 박 대통령의 변화 노력을 지켜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관훈토론이나 방송기자협회 초청토론 등 ‘변화된 박근혜’에 대한 검증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반장급들의 ‘바뀐 박근혜, 못 믿겠다’는 기류에 한 몫 했다. 


후배 마크맨들이 전하는 간접적인 ‘정보보고’만으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인식 변화에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우리 신문사는 당시 여당 반장이 공석이었기 때문에 새누리당 출입기자 가운데 가장 선임이었던 내가 간담회에 참석하게 됐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인물을 만나는 자리라 마냥 편하지는 않았는데 기라성 같은 타사 선배들 30여명과 함께 한다는 점도 내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나와 적게는 5년에서 많게는 15년여까지 연차가 있었기에 언행을 주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오찬 자리에서 내게 질문 기회가 주어진다거나 박 대통령 주변에 앉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사치에 불과했다. 


미리 질문거리를 준비한다고 해도 출입 연차 등 관행을 고려할 때 나에게까지 마이크가 돌아올 리 만무했기 때문에 ‘사고 안 치면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 자리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국회 기자실과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을 돌며 국회 출입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박 대통령이 기자실을 도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을 출입하지 않았던 일부 기자들까지 개인적 인연을 부각시키며 인사를 건넸고 일부는 사진촬영을 하는가 하면 저서를 직접 들고와 책 표지에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반면 정치적 입장 탓인지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당시 행보는 ‘바람 몰이’ 차원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전해졌다. 


이윽고 박 대통령이 내 자리에 다다랐다. 취재하면서 몇 차례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여유를 갖고 일대 일 대화를 가졌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악수를 건넨 박 대통령은 내가 멘 빨간색 넥타이를 소재 삼아 “색이 예쁘다”는 말로 대화를 이끌었다. 새누리당 상징색인 빨간색 넥타이가 눈에 띠었던 모양이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니 간담회까지는 한 시간 가량 남아있었다. 


이에 타사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과 인사를 주고받은 각자의 내용 등을 주고받으며 종합적 분위기를 파악해 회사에 ‘정보 보고’ 한 뒤 간담회 장소로 이동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새누리당의 일부 당직자들만 자리했을 뿐 다른 기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초대된 기자들 가운데 막내였던지라 먼저 도착해 기다리다가 선배들에게 인사하려고 마음먹고 일찍 찾아간 탓도 있었다. 


가장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선물도 챙길 수 있었다. 연차순으로 배치되면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 양쪽 끝 부근에 자리가 배치됐을 텐데 운 좋게 박 대통령과 마주 보는 방향의 ‘상석’을 부여받게 됐다. 


론 박 대통령의 양 옆 자리를 비롯해 VIP와 눈을 바로 마주칠 수 있는 맞은 편 자리는 가장 고참급 선배들의 자리였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내 자리가 최고의 ‘로얄석’이었다. 


다른 기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박 대통령도 입장했다. 


박 대통령은 한 바퀴 돌면서 기자 한명 한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나눴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미 인사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훈훈한 분위기였다. 


박 대통령은 인사를 마친 뒤 모두 발언을 통해 “좋은 소식이 전달되도록 국민들께 희망을 드릴 수 있는 노력을 많이 하고 기자 여러분들과도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식사 진행과 함께 자연스럽게 간담회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편안한 마음으로 가벼운 식사 자리를 갖자고 했지만 기자들은 박 대통령과의 오찬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가 준비해온 질문들을 쉴 새 없이 이어갔다. 


한 선배는 40대를 대선 승부처로 보고 있다며 이들 표심을 공략할 방안에 대해 물었고, 또 다른 선배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 대통령이 내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는)’ 슬로건의 변화 여부를 물었다. 


복지 확대 기조에 따른 재원 마련 방안을 묻는 기자도 있었고, 화법과 스타일 변화 등 ‘새로운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질문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이미지 변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제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제 생각이 여러 가지로 달라져 그렇게 표현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정말 많이 달라졌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했는데, 순간 ‘박 대통령은 헝클어진 머리와 구겨진 옷차림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 박근혜'는 언제나 정돈된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한번 정도는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박근혜가 바뀌었다'는 인식을 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내가 이 같은 생각에 잠시 빠져있던 사이, 박 대통령은 전날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전직 대통령 묘소를 두루 참배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전격적으로 찾았던 게 자신의 아이디어였음을 밝혔고, 호남 민심 공략 방안에 대한 나름의 구상도 소개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마이크가 운 좋게 내게로 넘어왔다. 순간 이원기 대변인 행정실장과 눈이 마주쳐 마이크를 건네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미혼이신데 집권하시게 되면 영부인 전담 공간인 ‘청와대 제 2부속실’을 어떻게 활용하실지 궁금하다”고 했고, “체험을 공유하는 것도 소통의 한 방법인데 젊은층과 소통한다는 취지에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보 실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제가 국민행복을 강조하고 있는데 국민행복을 위해서라면 찢어진 청바지를 얼마든지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순간 간담회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단아한 이미지의 대명사와도 같은 ‘박근혜’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불량한 모습을 상상하곤 모두가 즐거워져 박장대소를 터트린 것이었다. 


웃음이 한동안 이어지자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런 변화는 별것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실제로 입으면) 국민행복이 아니라 스캔들이 될 것”이라며 추가적인 농담도 던졌다. 


‘찢어진 청바지’가 그야말로 ‘빵’터지자 간담회장 이곳저곳에서는 ‘볼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밑에 내려놓았던 취재수첩에 메모를 남기는 기자들도 있었고 자신의 휴대폰이 정상적으로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있는지 재차 확인하는 기자들도 보였다. 


평소 말을 건네기도 쉽지 않은 선배들을 앞에 두고 막내 기자로서 유력 대통령 후보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나름 ‘종합면 톱’급 기사가 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뿌듯함도 느껴졌다. 


다만 박 대통령은 또 다른 질문이었던 청와대 제2부속실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이후 연평도 포격사건과 5·24 대북조치, 건강관리비법 등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지다 시대정신에 대한 질문을 끝으로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된 기자간담회는 마무리됐다. 


간담회가 끝나고 통신사인 연합뉴스를 비롯해 많은 언론매체들은 온라인을 통해 ‘박근혜, “젊은층 소통위해 찢어진 청바지 입겠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보도전문채널은 물론 그날 저녁 지상파 3사 및 종편 4사도 이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다. 


문에서도 ‘찢어진 청바지’ 기사는 빛을 발해 다음날 주요 일간지 1면, 3면을 장식했다. 칼럼과 기자수첩(취재일기) 소재로도 많이 활용됐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박근혜와 찢어진 청바지’를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100개가 넘게 등장할 정도로 화끈한 반응이었다. 


박 대통령도 간담회로부터 70여일 지난 그해 10월31일 ‘찢어진 청바지를 입겠다’는 약속의 절반을 지켰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바지쇼’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청년들이 바라는 지도자 쇼’에 후드 티에 물이 살짝 빠진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만큼은 정장차림의 정돈된 이미지에서 탈피해 청바지 차림에 빨간색 워커를 신고 연단에 올라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박 대통령의 이날 옷차림 사진 또한 다음날 주요 일간지의 지면을 수놓았다.


당시 박 대통령 캠프는 현장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박 대통령이 파격적인 옷차림을 선보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 기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옷차림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질문을 던졌던 기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찢어진 청바지를 입겠다”는 발언의 주인공은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물 빠진 청바지를 입었을 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는 측면에서 박 대통령은 아직 나를 비롯한 국민들과의 약속을 정확히 지키지는 못했다. 


내가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했다. ‘불통’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전해지던 유력 대선주자에게 국민과 소통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에 유력 대선주자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이고 절반 이상 행동으로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여전히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전해지고 있다. 아쉬운 측면이 일부 있다는 반응이다.



나는 이제라도 박 대통령이 국민 행복을 위해 소통 방식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찢어진 청바지’ 입은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5월 가정의 날을 맞아 ‘파격적인 옷차림’을 선보인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지지 않을까? 


대통령의 추가적인 ‘움직임’을 기대해본다.


 <*필자는 원고 작성시 아시아투데이 소속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