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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준 부장검사 거액 수뢰 및 수사개입

SBS 조기호 기자  2013.11.04 14: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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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이 빚어준 단독 보도


 CBS에 입사한 뒤 수습기자로서 시린 겨울을 보낼 때였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경찰서를 취재하던 새벽, ‘그 분’을 만났다. 떡진 머리와 퀭한 눈이 안쓰러웠는지 ‘그분’은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새벽 시간 ‘그분’도 얼른 기자를 보내고 쉬고 싶었을 텐데 ‘그분’은 다시 밖으로 데리고 나가 커피 한잔을 뽑아줬다. 차라리 사건을 주지, 마음은 급한데 ‘그분’의 장광설은 길어졌다. 보고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 다음 라인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고향부터 학교, 가족 관계까지 내가 기자인지 ‘그분’이 기자인지 모를 정도로 ‘그분’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평소 사건 없으면 패스, 하던 나는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그분’의 이야기를 자를 수 없었다. ‘그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무릎을 쳤으며 신나게 낄낄대기도 했다. 덕분에 라인 돌기는 계속 늦어졌고 보고할 사건을 못 챙긴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사건은 놓쳤지만 사람을 얻었고 ‘그분’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7년 뒤 김광준 검사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분’이 소개해준 사정 기관 관계자의 입을 통해서다. 2012년 11월8일 첫 보도를 하기 3주 전이었다. “자그마치 검사가 4명이야. 이번엔 절대 못 뭉갤 걸?” 듣는 순간 피가 뜨거워졌다. 내 피는 달아올랐는데 그 관계자의 입은 거기서 굳게 닫혔다. 끙끙대는 나를 위해 ‘그분’이 처음으로 나섰다. 7년 전의 인연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해당 보도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 분’은 나를 대신해 그 관계자를 설득했고 이중 삼중의 철문 같던 그의 마음을 열어냈다. 


 


철통 보안 속에서 기사가 되기까지


<김광준 부장 검사의 거액 수뢰 및 수사 개입 보도>는 보도하던 날까지 기획취재팀 외에는 비밀에 부쳐졌다. 심지어 팀이 속한 사회2부 부장에게도 철저히 함구했다. 기사의 덩치와 파장을 간파해 취재 시간을 충분히 허락해준 홍순준 당시 팀장, 이 사건을 함께 취재하고 고민했던 김범주 선배, PD로서 기자가 보지 못한 맥락을 짚어준 임찬묵 선배 등 모두 4명만이 거친 숨을 참아가며 사건의 실체를 되짚었고 오보 가능성을 최대한 덜어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1월 초.


밤새 호수에 내린 물안개가 아침 햇살에 걷히듯 사건은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윤곽이 드러났다. 문제는 타이밍.


 ○11월 8일 오전


‘그분’이 다급히 나를 찾았다. 다른 아이템을 취재하느라 늦게 확인한 전화기는 온통 ‘그분’의 아우성으로 도배돼 있었다. 얼른 콜백을 했다. “기호야, 너 그거 얼른 써야 겠다. 다른 언론이 냄새를 맡은 거 같다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어디까지 안 거지? 방송인가? 신문인가?’머리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취재를 시작했다. 김광준 검사 사건이 아니라 경쟁 언론사가 어디인지가 취재 대상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자 취재가 됐다. 모 일간지였다. 이 사건의 중심축이 김 검사가 유진그룹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혐의와 조희팔 측으로부터도 수억을 받은 혐의, 이 두 가지라면 해당 일간지는 두 번째 축만 우선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취재원의 대답이 돌아왔다. 부장에게 보고할 시점이 온 것이다.


 ○11월 8일 오후.


김범주 선배와 나는 부장 자리로 갔다. 김광준 검사 사건의 개요를 설명했다. 부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번 세 번 재차 확인을 지시했다. 지금에 와서도 그때 그 지시는 지극히 당연하고 옳았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더 외곽 취재를 했다. 사정 기관 관계자를 또 만나 확신을 얻었다.


 ○11월 8일 방송 4시간 전.


밖에서 보도국과 화상 회의에 준하는 다중 통화 회의를 했다. 부장과 데스크, 팀원이 한자리에 모였고, 나는 서울 서대문 인근의 취재 차량 안에서 스피커폰을 켰다.


- 취재한 내용, 다 좋아. 그런데 우리가 되치기 당하지 않을 증거 확보했나?


= 경찰이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증거를 손에 넣지는 못했습니다.


- 그 증거가 지금까지 말한 거 말고 뭐가 있어?


= 김광준 검사가 차명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CCTV 장면이 있다고 합니다.


- 오케이. 들어와서 얼른 기사 써.


 그날따라 차는 왜 그리 막히던지. 취재수첩에 앵커 멘트와 기사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11월 8일 방송 2시간 전.


김광준 검사의 실명을 적시할 건지, 유진그룹을 기사에 박아 넣을 건지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김 검사는 SBS의 취재가 시작된 것을 알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유진그룹은? 다행히 김범주 선배가 그룹 고위 관계자와 통화에 성공했다. 거기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돈 거래가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빌려준 것이라는 해명이었다. 확인할 수 있는 건 모두 확인했고, 제거할 수 있는 지뢰는 모두 해체했다. 김광준 검사 사건 보도는 그렇게 두 꼭지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 


 


검찰총장 사퇴는‘기자들의 힘’


기자 욕심으로 치자면 SBS보도로 바로 ‘검찰총장 사퇴’라는 시나리오를 기대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을 던졌을 때 비거리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해당 보도의 파장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않겠다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른바 ‘색검’ 사건이 터졌다. 울고 싶은 검찰의 뺨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부 구성원이 제대로 때린 셈이다.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지만 그때까지 검찰은 자신 앞에 닥칠 쓰나미를 예상하진 못했다.


 거대한 쓰나미 중 하나는 한겨레신문 보도.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SK수사 사건을 축소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을 단독으로 기사화한 것이다. 평검사부터 선배 검사들까지 불만의 임계점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김광준 검사의 문자 메시지를 놓고 한 전 총장과 최재경 당시 중앙수사부장의 권력 다툼까지 불거진 건 결정적 쓰나미였다. 이후 검찰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고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은 결국 한 전 총장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보도의 시작과 끝은 ‘그분’과의 인연과 김광준 검사와의 악연, 검찰의 자충수라는 우연에, 기자들의 혼연까지 더해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우주가 움직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쁘지만 슬픈 수상


감히 자평하자면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검찰이라는 철옹성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데 불을 당긴 것, 그리고 권력 견제라는 기자의 고유 역할에 대해 여러 선배들이 높이 평가해주신 것 같다. 정말 감사 하게 생각한다.


 이번 보도를 함으로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상과 상찬을 받았다. 대단한 영광이라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스스로 이 감정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고 나니 ‘슬픔’이라는 답을 얻었다. 어릴 적 <상도>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서 아직까지 뇌리에 강력하게 박힌 단어가 있다. 활인도(活人刀)와 살인도(殺人刀)가 그것이다.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칼’이다. 같은 칼이라도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기자들이 갖고 있는 펜과 마이크를 흔히들 칼이라고 한다. 내가 휘두른 칼로 김광준 검사의 검사 인생이 죽었다. 검사 인생뿐만 아니라 김광준이라는 인격도 죽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죄와는 별개로 나는, 기자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대단히 미안하고 슬프다. 다만 주위 사람, 특히 검찰 관계자로부터 듣는 위안이 그나마 내 슬픔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 준다. “넌 김광준 검사를 죽였지만 검찰이라는 조직을 살렸어. 그걸로 기자 역할은 충분히 한 거 아닌 가?”


괴로워 마신 술에 정신줄을 놔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또렷한 그 말 덕분에 그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수월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기자력(力)이란?


분에 넘치는 한국기자상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그분’이다. 사전적 의미에서는 취재원이지만 취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분’은 나와 내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다. 만약 그때 ‘그 분’이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장광설을 이어갈 때 1진이 무서워, 몸이 피곤해, 정신이 지쳐 그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왔다면? 기사만 좇느라 그냥 직장인이 돼버린 기자보다는 사람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며 많이 듣고 보고 캐내는 기자가 그래도 세상이 바라는 기자상(象)이 아닐까.


올해에도 이 영광스러운 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늘 깨어있는 자세로 초심을 잃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