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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허귀식 중앙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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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귀식 중앙일보 기자가 지난달 28일 불의의 사고로 별세했다. 향년 48세. 고인은 서울경제신문·한국경제신문을 거쳐 2001년 4월 중앙일보 입사 뒤 경제부·국제부와 중앙SUNDAY 등에서 근무했다. 지난 1월부터는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으로 재직해왔다.
본보는 고인의 후배인 강혜란 중앙일보 기자의 추도사를 싣는다.시간을 10분만, 아니 10초만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 이후 떠나지 않는 상념입니다. 그 바위로 몸을 뻗는 선배를 모질게 채근해 돌려세웠더라면. 아니 그날 북한산 사자능선 보현봉이 아니라 명성산에 억새나 보러갔었더라면. 두달 전 선배에게 “등산모임 만들자”며 선배 취재원들 틈에 끼어 주말 산행을 시작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날의 시작은 완벽했습니다. 모두가 칼같이 오전 7시에 모였고, 햇살 없이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혀줬습니다. 여느 때처럼 웃음기가 끊이지 않았고, 이제까지 산행 코스 중에 오늘 능선이 최고 비경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 두 시간 반 만에 목표지점에 도착해 하행만 남았더랬습니다. 만약 이것이 신의 뜻이라면, 신은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이란 걸 알려주려 그랬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하루가 그렇게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서울경제에서 경력으로 옮겨온 선배는 내년이 중앙일보 근속 13년이라 했습니다. 안식월을 맞으면 백두대간 종주를 할 거라고, 올초부터 부쩍 산행을 즐겨했습니다. 10년 전 탔던 바위들을 다시 오르며 활기를 뽐냈습니다. 그 모습이 위태위태하면서도 자랑스러웠던 건, 선배가 산과 잘 어울려서였습니다. 업무의 고단함, 고3 딸 고1 아들 걱정 등 오십을 앞둔 인생 중턱의 무게를 선배는 산으로 달랬습니다. 카카오톡 대화명에 ‘산이 답이다’를 적어놓을 정도로요.
등산 초보인 저는 선배 따라 산을 배웠습니다. 저 역시 산이 좋아진 건, 올라갔다가 반드시 내려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피트니스나 수영은 하다가도 꾀를 부려 중단하는 일이 잦았는데 등산은 좋든 싫든 내려와야 하니까, 운동을 마치는 즐거움을 깨쳤습니다. 그런데 그날 119 구조대 편에 차가운 시신을 실어 보낸 뒤 하산길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릅니다. 비로소 ‘이래서 산이구나 이래서 삶이구나’ 했습니다. 어떻게든 내려오는데, 내려와야 하는데, 어떻게 내려갈지 누구도 정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선배는 산만큼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사람을 좋아해 술도 좋아했습니다. 오랜 출입처인 경제분야는 물론 정치·외교·사회 분야에서 두루 사람을 엮어 만나기를 즐겼습니다. 해박한 인문지식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을 통섭하는 술자리는 ‘방과 후 학교’ 같았습니다. IT 방면에도 빨라 증권사 속보 기사 시스템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일상에선 실시간 유머와 정보를 카톡으로 종종 전파하셨죠.
촌철 문장 속에 경륜과 통찰이 번득이던 칼럼을 더는 읽지 못하겠지요. 족집게처럼 기사 허물을 집어내던 데스킹을 다시 받을 일도 없겠지요. 마당발 인맥에 꼽사리 끼어 진득한 취재원 관리를 배울 일도 더 이상 없겠지요. 폭탄주 속에 인생·세상·사랑을 논하던 뒤풀이도 이젠 영원히 없겠지요.
“여기까지 왔는데 도전해야지!” 바위를 올려보며 뱉은 그 말이 유언이 됐습니다. 인간으로서 기자로서 선배는 늘 그랬습니다. 늘 끝까지 가려 했습니다. 현실의 정상보다 의지의 정상을 추구했습니다. 많이 아프고 많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산도, 선배가 남겨주신 모임도 놓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 부끄럽지 않게, ‘도전’이란 말을 새기고 살겠습니다. 산에서 답을 찾으셨던 선배, 부디 그 답으로 영원히 자유롭고 평온하시길.
애끊는 그리움으로 ‘산 후배’ 강혜란이 바칩니다.
<강혜란 중앙일보 기자>